오바마 “北,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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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대통령 첫 미얀마 방문

“나는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선택지를 줬습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평화와 진보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미국은 손을 내밀 것입니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 미얀마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양곤대에서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하며 북한에 메시지를 던졌다. 미얀마처럼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정치와 경제의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한다면 미국은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한때 군부독재를 계속하며 핵개발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같은 길을 걷던 미얀마와 북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마음을 고쳐 비핵화와 개혁 개방에 나선 ‘미얀마의 길’을 북한도 따라가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한 것이다.

미리 뜻을 맞춘 듯 미얀마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하루 앞둔 18일 비밀 핵시설로 의심 받아 온 장소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북한과의 군사 관계를 단절하라고 촉구한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나온 화답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으로 향후 2년간 미얀마의 정치개혁 진전 여부에 따라 1억7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핵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된다면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실제 사례를 북한에 보여준 것이다.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등장 이후에도 창문을 꼭 닫아걸고 독재와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과 대비시키려는 듯 이날 5시간 40분 동안 체류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의 힘겨운 민주주의 이행을 높이 평가하고 힘을 북돋웠다.

“사회 상층부에서 시작된 개혁은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격한 진보의 희미한 빛이 꺼지지 않고 모든 국민을 위한 빛나는 북극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양곤대 강당을 가득 채운 대학생들에게 “(미얀마의) 괄목할 만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비춘 미얀마의 미래는 미국의 민주주의였다.

그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민간에게 통제받는다. 최고 군사령관인 대통령은 의회에 내 의지를 강요할 수 없고 내가 임명한 연방 대법원 판사에게 어떻게 판결하라고 얘기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이유로 “미국에선 가난한 아이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여러분이 나아가야 할 미래가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양곤대는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반정부 투쟁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부친인 아웅산의 모교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 대학생들에게 진보와 미국식 민주주의를 역설하는 장면은 두 나라의 20년 갈등을 종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회주의라는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을 거쳐 이제는 민주화 이행을 추진하고 있는 미얀마 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수치 여사가 2010년까지 15년 동안 연금됐던 자택을 직접 방문했다. 9월 백악관을 방문했던 수치 여사의 초청에 화답한 것. 그는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총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되는 등 지난해 미얀마에서 고무적인 발전의 징후들을 목격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미얀마 민주화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치 여사는 “모든 변혁의 과정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모두가 성공이 눈앞에 있다고 느낄 때”라며 “성공의 신기루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첫 일정으로 테인 세인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개혁을 향한 진전이 미얀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테인 세인 대통령과 공유했다”며 “이는 갈 길이 먼 여행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양국 관계를 강화하도록 더 열심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인 대통령 통치하에서 민간이 정부를 주도하고 의회는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수백 명의 양심수가 풀려났고 강제노동은 금지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세인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두 나라 사이에는 실망과 장애가 있었지만 지금은 관계가 개선되었고 앞으로 더욱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공식 국명으로 정한 ‘버마’ 대신에 ‘미얀마’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미얀마 정부에 외교적 예의를 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함께 이날 오전 9시 35분(현지 시간) 에어포스원을 타고 미얀마의 양곤 공항에 도착했다. 미얀마 국민의 환호를 받은 그는 일정을 마치고 이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을 위해 캄보디아로 출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도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이었다. 20일 프놈펜에서 열리는 EAS 참석이 목적이었다. 이보다 하루 앞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프놈펜에 도착해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의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 미국의 접근을 막으려는 중국의 주요 2개국(G2) 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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