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해외 에너지 기업사냥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인수합병이 마무리되면 중국이 세계 유가의 기준가격 중 하나인 북해산 브렌트유의 시세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산유국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23일 캐나다의 넥센을 151억 달러(약 17조3400억 원)에 전액 현금으로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CNOOC는 넥센의 20일 주가에 61%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주당 12.7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61%의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당일 주가보다 61%를 더 지불하고 인수하겠다는 것. 이는 중국의 해외 기업 인수 금액 중 역대 최대 규모다.
넥센은 캐나다 서부의 오일샌드와 셰일(혈암·頁巖)가스 채굴권을 갖고 있으며 영국 북해와 나이지리아 멕시코 콜롬비아에서도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왕이린(王宜林) CNOOC 회장은 “우리는 넥센의 풍부하고 다양한 자산 포트폴리오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으며 이번 인수가 CNOOC 주주들에게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넥센 이사진도 중국의 이번 인수 제안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다만 규제 당국의 반독점 심사 절차 통과가 남아있다. CNOOC는 2005년에도 미국의 유노칼을 185억 달러에 인수하려고 했지만 미국 정계의 반발로 포기했다. 넥센은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기 때문에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 당국으로부터도 기업결합과 관련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중국 최대의 에너지 기업인 중국석화(SINOPEC)도 23일 캐나다 탈리스만에너지의 영국 석유사업 부문 지분 49%를 15억 달러(약 1조72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두 건의 거래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인수금액이 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국제 원유시장에서 ‘가격 수용자’가 아닌 ‘가격 결정자’로 등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인수하는 넥센과 탈리스만이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북해산 원유는 최대 30만 배럴로 북해에서 나오는 전체 원유(100만 배럴)의 30%다. 전 세계 하루 산유량(8200만 배럴)이나 중국의 원유 수급(하루 생산 407만 배럴, 소비 905만 배럴)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넥센은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저드 유전의 지분 43.2%를 갖고 있다. 국제 원유 시세는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두바이유 등 세 가지를 기준가격으로 해 결정된다. 세 가지 유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르내린다. 따라서 중국이 부저드 유전의 생산량을 조절하면 브렌트유 가격이 영향을 받게 되고 이는 다시 WTI와 두바이유의 시세를 자극하게 된다. 로이터통신은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중국이 국제 유가 결정의 핵심 역할을 하는 북해 유전의 조절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해산 원유는 한국이 올해 들어 이란산 석유 유입 감소 및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른 원유 수입관세(3%) 철폐로 수입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있는 유종(油種)이기도 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