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에 동성커플 기부금 쇄도… 대선 이슈 바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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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결혼 지지’ 정국 강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결혼 합법화 지지를 공개 선언한 후 이 문제가 미국 정가를 강타하고 있다. 그동안 고유가와 높은 실업률 등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심판을 내려야 한다며 공세를 펴온 공화당은 갑자기 선거이슈가 경제가 아닌 사회 이슈로 바뀌자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면 민주당은 하루 만에 공개지지 의사를 밝히며 지도부들이 총출동해 동성 결혼 합법화 이슈를 부각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이 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대선 이슈를 바꾸기 위한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10일(현지 시간) “대통령이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한다고 밝힌 만큼 민주당 강령에도 포함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9월 3일부터 6일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주도인 샬럿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강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 전당대회는 오바마 대통령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하는 자리다. 더구나 노스캐롤라이나는 8일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주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보수적인 지역이다. 이곳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라는 당 강령을 채택함으로써 정면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도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한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민주당이 입을 수 있는 선거 역풍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선 캠프엔 오바마 성명 직후 1시간 반 만에 100만 달러(약 11억4700만 원)가 모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밤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의 저택에서 열리는 모금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향했다. 캘리포니아 주의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는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혀 이번 선언이 기부금을 모으는 데도 효력을 톡톡히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공화당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워싱턴포스트가 이날 밋 롬니 후보가 고교 3학년 시절인 1965년 학교에서 동성애자인 하급생을 괴롭힌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도해 공화당은 더욱 궁지에 몰리는 모습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롬니 후보가 1965년 봄 미시간 주 명문 사립인 크랜브룩고교 3학년 재학 때 동성애자로 추정되는 2학년 남학생 존 로버라는 학생을 다른 학생과 함께 집단적으로 괴롭힌 사실을 당시 폭행에 가담한 학생 5명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했다. 당시 조지 롬니 미시간 주지사의 아들이던 밋 롬니는 한 눈을 가린 긴 금발을 하고 있던 로버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 “저런 꼴을 하고 다녀선 안 된다”고 수차례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급기야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로버를 땅바닥에 쓰러뜨린 뒤 눈물을 흘리며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위로 머리를 싹둑싹둑 잘랐다. 목격자인 한 친구는 학교에서 롬니에게 어떤 엄벌을 내릴지 지켜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롬니는 또 커밍아웃하지 않았으나 동성애자로 추정되는 또 다른 남학생이 교실에서 말을 하려 하자 “됐어, 이 여자야(Atta Girl)”라는 말로 남자이면서 여자로 살고 있다는 뜻의 조롱하는 말을 하며 가로막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보도가 나온 뒤 롬니 후보는 폭스뉴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에 좀 어리석은 짓을 했고 그 때문에 누군가 다치거나 공격을 받았다면 분명하게 사과한다”며 “하지만 그 일은 1960년대 일어난 일로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이슈는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47년 전의 이 일은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 결혼 합법화 선언과 맞물리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대선 이슈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문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 민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하는 점”이라며 “국민들은 일자리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선언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워싱턴포스트는 “경제 이슈 중심의 여론을 바꾸고 젊은층의 지지를 결집하는 데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핵심 지지층인 흑인사회에선 동성 결혼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오바마#동성커플 기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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