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權 역풍’에 놀란 푸틴, 反美 깃발 치켜들다

  • Array
  • 입력 2012년 2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다음 달 3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냉전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반미 카드’를 뽑아 들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유튜브에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한 여론조사원이 시민에게 마이클 맥폴 신임 주러시아 미국대사와 맥폴 대사를 닮은 인물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가 어린 소녀의 성범죄자인 것 같으냐”고 물어보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대답들은 하나같이 맥폴 대사를 가리켰다. 이 동영상은 푸틴 총리를 지지하는 청년그룹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됐다.

푸틴 총리는 최근 국영 TV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복속시키기를 원한다. 그들(미국 등 서방)은 우방이 아닌 가신(家臣)을 원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대선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됐던 푸틴 총리는 지난해 말부터 총선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며 대권 가도에 역풍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16년에 걸친 옛 소련 연방보안국(KGB) 경력을 가진 푸틴 총리는 독재와 공직 사회의 부패, 사회적 불평등으로 커지는 국민의 분노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반미 감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치분석가 드미트리 오레슈킨 박사는 “러시아가 적에 둘러싸여 빈곤하다는 옛 소련의 주장을 되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총리의 반미 발언은 핵심 지지층인 블루칼라 노동자와 농민, 공무원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분석가인 알렉산더 코노바로프 씨는 “시민들이 TV로 세뇌됐고 많은 사람들은 푸틴의 말을 정말 믿고 있다”며 “푸틴이 미국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푸틴 선거 전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푸틴 총리 진영은 또한 대규모 친정부 시위를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18일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수만 명의 푸틴 총리 지지자들이 시내 ‘10월 혁명 콘서트홀’ 앞에서 “푸틴, 우리는 강한 러시아를 위해 당신과 함께하겠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2000여 명이, 극동 지역 하바롭스크에서도 1만2000여 명이 친푸틴 시위를 벌였다.

한편 17일 여론조사기관 브치옴이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7%가 푸틴 총리 지지 의사를 밝혔다. 최대 야당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후보는 9.2%, 극우민족주의 자유민주당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후보는 8%에 그쳤다. 이 때문에 푸틴 총리가 과반득표자가 없을 경우 벌이는 2차 투표까지 가지 않고 1차에서 승리를 확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