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당 65% 득표 나오게 선관위에 투표조작 지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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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지역 선관위장 “4대 정당 관계자들 모여 각당 득표비율까지 조율”

부정선거 파문 확산될 듯

“‘푸틴 당(통합러시아당)’의 득표율을 65%로 맞추기 위한 사전 지시가 있었다.”

4일 치러진 러시아 연방하원(두마) 총선에서의 선거부정에 대한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를 책임진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이 직접 선거부정을 폭로하고 나섰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군 병력까지 투입된 상황에서 부정선거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선관위원장 A 씨는 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신분이 드러나면 해고 등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자신의 선거구에서 있었던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선거 전 통합러시아당을 포함한 ‘주요 4개 정당’ 관계자가 모여 통합러시아당 등 각 당의 득표율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에 대해 협상을 벌였다. 통합러시아당은 68∼70%를 희망했으나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65%로 양보했다는 것이다. 통합러시아당뿐 아니라 다른 주요 정당도 득표율 조작에 동참한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합의에 따라 A 씨가 담당한 투표소의 선관위 직원들은 참관인의 눈을 피해 하루 종일 ‘푸틴 당(통합러시아당)’에 기표해놓은 용지를 몰래 투표함에 넣었다. 한 차례에 50장씩 넣기도 했다. 직원들은 용지를 반으로 접어 넣는 사전 훈련을 받기도 했다. A 씨는 주머니에서 꺼낸 30∼50장이 한 묶음인 용지를 어떻게 접어 투표함에 넣는지 직접 재연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선거 참관인을 멀리 벽 쪽에 앉히기도 했으나 한 참관인은 12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열정적으로 감시해 애를 먹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투표 종료 10분 전 경찰을 동원해 그 참관인을 추방했다.

한 투표소에서 몰래 넣을 수 있는 사전 투표용지 장수가 제한되어 있어 ‘푸틴 당’에 기표한 용지를 직원에게 줘 다른 투표소들을 다니며 집어넣게 하기도 했다. 투표권이 없는 이주민들을 유권자로 둔갑시킨 후 투표하도록 하기도 했다.

A 씨는 “투표가 끝난 후 개표해 보니 득표율이 50%에 불과해 상부에 보고하자 65%로 높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65% 득표율 조작’이 여러 투표소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A 씨는 조작된 투표용지를 제외한다면 실제 득표율은 25%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러시아당의 모스크바 전체 득표율은 46.5%로 전국 득표율 49.5%보다 낮았다.

한편 러시아 시위대는 당국의 저지에도 앞으로 매일 시위를 벌이겠다고 천명했다. 자신들을 ‘사기꾼과 도적 집단에 대한 반대자’로 부르는 시위대는 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매일 오후 7시에 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공정선거를 위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조직은 10일 오후 모스크바에서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으며 현재까지 5000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참가의사를 보였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7일 인테르팍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이번 선거가 많은 부정이 있었고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선거를 다시 치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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