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사망]고립무원… 겨우 몸 숨길만한 곳에… 카다피-후세인, 독재자 최후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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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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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숨었던 토굴 독재자의 최후는 묘하게 닮아 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 고향 티크리트의 지하 토굴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2003년 12월 체포됐다. 무아마르 카다피도 사망 직전까지 고향 수르트에 있는 콘크리트 참호 속에 숨어 있었다. 후세인의 체포 직후 미군이 후세인이 숨어 있던 토굴 주변을 지키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후세인 숨었던 토굴 독재자의 최후는 묘하게 닮아 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 고향 티크리트의 지하 토굴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2003년 12월 체포됐다. 무아마르 카다피도 사망 직전까지 고향 수르트에 있는 콘크리트 참호 속에 숨어 있었다. 후세인의 체포 직후 미군이 후세인이 숨어 있던 토굴 주변을 지키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철권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반카다피군의 공세에 밀려 차츰 입지를 잃어가자 자신을 마지막까지 지지하는 소수의 무장세력이 웅거하는 고향에서 최후를 결정지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반군에 대해선 한때 나토군의 막강한 화력 지원에도 카다피군과의 대결에서 무력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8월 21일 수도 트리폴리에 진입해 카다피와 핵심 측근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던 밥 알아지지아 요새를 함락하면서 전세를 결정짓고 카다피 몰락은 사실상 시간문제가 됐다.

카다피가 최후를 맞은 수르트는 트리폴리가 반군에 점령된 후 나토군의 집중적인 공습을 받았다. 대대적인 포격과 함께 진격 작전을 벌이던 과도국가위원회(NTC)군은 20일 마침내 수르트를 완전히 점령했다.

카다피군을 추격해 가던 NTC군은 이달 8일부터는 수르트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나토군의 공중 지원에 힘입은 NTC군은 중화기와 탱크, 장갑차 등을 앞세운 채 수르트로 진군했다. 카다피군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총공세 10여 일 만에 수르트를 완전 장악했다. NTC의 압델 라만 부신 군대변인은 “수르트는 완전히 해방됐다”고 밝혔다.

최근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소개된 수르트 시가지는 마치 주택이 벌집이 된 것처럼 총탄과 포탄 자국으로 얼룩져 카다피 지지군과 NTC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보여줬다.

반카다피군이 8월 트리폴리에 진입한 후 카다피의 행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측이 있었다. 카다피가 반군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트리폴리 시내 모처에 은닉해 있다는 설과 고향인 수르트로 잠입했다는 설, 주변 국가로 도피했다는 설 등도 있었으나 결국 그는 고향밖에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는 한때 해외 망명설도 없지 않았다. 그와 절친한 짐바브웨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짐바브웨로 망명하거나 트리폴리가 함락된 후 아내와 딸 등이 도피한 알제리로 피신했다는 설도 있었다. 카다피가 도피나 망명을 하지 않았는지 못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4월 나토군의 공습이 시작된 후 카다피는 “나는 내 조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고향에서 최후를 맞았다. 카다피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자살할지언정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던 평소의 카다피다운 최후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가 NTC군의 총격을 받은 곳은 겨우 한 몸 숨길 만한 ‘작은 구멍’ 같은 참호였다. 또 그의 지지자들은 차량을 타고 도주하다 NTC군의 포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여 그가 사살될 당시에 그는 거의 고립무원에 가까웠다.

카다피는 8월 트리폴리가 함락된 후 육성 방송을 통해 “우리는 쥐새끼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집에서 나와 트리폴리를 해방시키라”고 NTC군을 ‘쥐새끼’에 비유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외롭고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이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2003년 12월 13일 미군과 이라크 경찰 합동 부대의 ‘붉은 새벽 작전’으로 그의 고향 티크리트 남서쪽 아드와르 농가에서 발견될 때와 유사하다. 후세인은 당시 농가의 은밀한 토굴에서 체포됐으며 체포될 당시 그의 지지자들도 없었다. 후세인은 특공대원들이 토굴 안에 총을 쏘자 “쏘지 마, 나를 죽이지 마, 쏘지 마”를 연발했다. 최후를 눈앞에 둔 독재자의 모습은 닮은 점이 있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동영상=‘붙잡힌 카다피’ 죽기 직전 생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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