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울리고 떠난 ‘11세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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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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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과 싸우면서도 이웃 돕던 해리 모즐리 끝내 사망같은 병 앓는 환자 위해 구슬팔찌 만들어 팔아

뇌종양에 걸려 8일 숨진 해리 모즐리 군의 생전 모습. 병마 속에서도 직접 만든 팔찌를 팔아 암 환자들을 위해 50만 파운드 이상을 기부했다. 사진 출처 해리 모즐리 군 트위터
뇌종양에 걸려 8일 숨진 해리 모즐리 군의 생전 모습. 병마 속에서도 직접 만든 팔찌를 팔아 암 환자들을 위해 50만 파운드 이상을 기부했다. 사진 출처 해리 모즐리 군 트위터
치명적인 병마와 싸우면서도 같은 병에 걸린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며 모금활동을 벌여 온 11세 영국 소년이 결국 세상을 떠나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버밍엄에 살던 해리 모즐리 군은 어렸을 때부터 책이나 TV를 볼 때 항상 고개를 기울이는 습관이 있었다. 시력도 계속 나빠져만 갔다. 일곱 살이던 2007년 2월 해리는 청천벽력같이 희귀성 뇌종양인 모양세포성성상세포종(pilocytic astrocytoma)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린이 5만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난다는 희귀종으로 뇌 안에서도 시각을 관장하는 부분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학요법을 동원한 치료도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의사는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른도 쉽게 감당하지 못하는 고된 항암치료가 시작됐지만 소년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해리의 투병생활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09년,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한 아저씨를 병원에서 만나고부터였다. 55세 사업가였던 이 남자는 매일같이 해리와 같은 치료를 받으면서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됐다. 하지만 ‘친구’의 병세는 갑작스럽게 악화됐고 해리는 집에 있는 구슬을 가져다 팔찌를 직접 만들어 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팔찌 수익금을 뇌종양 연구기금으로 기부해 친구의 치료를 돕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해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해리는 뇌종양에 걸린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이어갔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슈퍼마켓이나 쇼핑센터에 나가 팔찌를 팔고 모금을 위해 수백 명의 청중을 상대로 강연을 다녔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해리는 2009년 말에는 한 자선단체가 매년 수여하는 ‘올해 영국에서 가장 친절한 어린이(Britain's Kindest Kid)’상을 수상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 존 테리를 비롯한 영국 축구스타, 음악인 등 유명 인사들이 해리가 만든 팔찌를 착용하고 다니고 직접 찾아와 격려했다. 그는 2009년 이후 2만여 개의 팔찌를 팔아 총 50만 파운드(9억1200만 원)를 모금했고 이를 영국 암 연구소에 기부했다.

하지만 해리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올 8월 쓰러졌다. 대수술을 받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뒤 깨어나지 못했다. 해리의 어머니 조지나 씨는 8일 저녁 6만7000명의 트위터 팔로어에게 “용감한 아들이 내 팔에 안겨 잠들었다. 그 순간, 이 세상은 너무나 어둡고 잔혹한 곳이 됐다”고 썼다.

이날 트위터에는 추모 글이 이어졌다. 브라운 전 총리의 부인 세라 브라운 여사는 “그가 11년 짧은 인생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가. 훌륭한 소년 해리를 만나게 돼 즐거웠다”고 말했다. 영국 암연구소의 리처드 테일러 마케팅 이사는 “해리는 영국 전체가 자신이 만든 팔찌를 자랑스럽게 차기를 꿈꿨다”며 “치명적인 병을 갖고 있으면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고 다른 이들을 항상 돕고자 했던 소년이었다”고 회고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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