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연쇄테러가 이민자들에 대한 극단적 반감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오랫동안 다문화정책을 펴온 유럽 사회가 고민에 휩싸였다. 오랜 이민자 역사를 가진 유럽의 다문화정책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으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문답으로 정리해 본다.
Q. 유럽의 다문화정책은 언제부터?
A.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여러 인종과 문화가 단순히 융합되는 ‘멜팅 폿’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 각자 인종이 고유의 색과 맛을 가지며 뒤섞이는 ‘샐러드 볼’에 가깝다. 동화주의(assimilation)와 반대다. 식민시대에 제국을 경영한 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주로 옛 식민 국가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영국은 1950년대부터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프랑스는 알제리 튀니지에서 많이 건너왔다. 1970년 초 경기침체로 인한 이민억제책으로 다소 주춤하다가 1980년대 들어 출산율이 급감하자 다시 적극적 이민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민자 대다수가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넘지 못하고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자 다양한 정책을 펴게 됐다.
반면 제국의 경험이 없는 북유럽의 경우 2000년대 들어 급증하기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도주의적 이민정책을 폈다는 점에서 자국내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이민을 받아들인 식민종주국 출신 유럽 국가들과는 차이가 있다.
Q. 유럽식 다문화정책의 특징은?
A. 유럽 내 이민자들의 대다수는 주로 무슬림이다. 따라서 유럽식 다문화정책은 한마디로 무슬림 껴안기다. 정책의 내용은 나라별로 다르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사회학)는 “인도주의 이민정책을 편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 민주주의적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언어를 가르쳐주고 예산을 쓰면서까지 일자리를 마련해 줄 정도로 적극적인 정책을 폈다”면서 “학교에서 아랍어나 아랍문화교육을 하고 이민자를 위한 별도 TV프로그램 등도 운용했다”고 전했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이민자들이 본국의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동화정책에 기울었다. 영국 또한 정부가 돈까지 줘가면서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 대신 주거권리 고용 직업훈련 문화통합 참여교육 등에 주목했다.
Q. 정책은 성공했나?
A.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한 상황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말 “함께 어울려 공존하자는 접근법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한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다문화 혐오가 정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7년 덴마크 총선에서 극우 인민당이 13.9%를 득표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처음으로 원내 진입했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로선 이민을 통한 노동력 공급을 완전히 막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다문화정책을 폐기할 수도, 고수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설 교수는 “북유럽의 경우 인구 400만, 500만 소국이 매년 몇천 명씩의 난민을 수용하는 인류사적으로 칭찬받을 일을 했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거지들이 몰려왔다’는 식의 극우주의가 출몰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Q. 갈등의 원인은?
A. 무엇보다 최근 경기침체가 주된 이유다. 유럽연합(EU)의 확대로 이민은 자유로워졌지만 경제난으로 일자리는 줄고 재정난이 이어지며 복지 지출마저 줄어들었다. 여기에 숙련된 이주 노동자가 늘면서 노동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본국에 동화되기 싫어하는 극단적 무슬림들은 각종 테러로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 지역에서 발생한 테러의 주범은 주로 이민자들이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의 십자군전쟁에서부터 1990년대 중반의 세르비아에서의 인종청소에 이르기까지 인종과 종교(무슬림과 기독교)의 차이로 인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서구의 역사는 유럽에서 다문화사회의 정착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Q. 한국이 지향하는 다문화사회도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건가?
A. 전문가들은 “유럽 내 다문화정책의 경우 종교 갈등을 막기 위한 무슬림 껴안기의 측면이 강하지만 다양한 종교가 인정되는 한국에서는 극단적 상황은 기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다문화지원정책을 펴는 고선주 건강가정진흥원장은 “아직 이주 노동자 중 숙련노동자들이 적지만 시간이 지나고 숙련노동자가 많아지면 노동시장에서의 충돌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가 느끼는 박탈감과 차별에 대한 피해의식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사회 전체적으로 통합과 다문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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