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美국무 키신저,中외교 회고록 출간

  • 동아일보

지금부터 40년 전인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베이징에 보내 중국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중국은 고대에는 문명국가였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과는 약 20년 동안이나 고위급 외교접촉이 전혀 없었던 상태였다.

이때 키신저의 치밀한 외교활동은 냉전 종식으로 이어졌고 당시 중국과 미국에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 중-미 간 협력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옛 소련은 1990년 들어 소속 국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해체됐다.

이후 중국은 경제개혁을 해 나가면서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라에서 오늘날 글로벌 무대에서 날로 역할을 강화해 나가는 강대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처럼 서방세계와 공산국가 간의 냉전 종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88)이 양국 외교 관계사를 정리한 책 '중국에 관해'(On China)를 출간해 미국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16일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을 50차례 이상 방문하면서 역사적인 미-중 수교의 가교역할을 해냈다.

뉴욕타임스(NYT)는 키신저의 이 책을 매혹적이고 통찰력이 있으며 때로는 괴팍하게 보이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닉슨 전 대통령이 대중국 외교정책을 시작할 때 키신저가 맡았던 중요한 역할을 설명할 뿐 아니라 중국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서방에 대한 외교정책과 견해를 형성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려 시도했다고 전했다.

키신저 장관은 이 책에서 "중-미간의 협력적인 관계는 세계 안정과 평화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면서 "두 나라 간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될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고 평가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키신저는 책 발간을 앞두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당시 비밀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중-미 외교 비화도 소개했다.

닉슨 전 대통령 당시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은 국내외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미국은 대만을 중국으로 인정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외교관계에서 투명성은 분명히 중대한 덕목이었지만 당시는 국제질서에서 평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절박한 시점이었다.

이에 닉슨은 결국 키신저를 중국에 파견하면서 절대적인 보안을 요구했으며 그에 따라 키신저 팀은 베이징으로 직행하지 않고 사이공과 방콕, 뉴델리, 파키스탄의 산맥도시 라왈핀디 등을 거쳤다.

경유지마다 일행은 느릿느릿 한 채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정을 보냈다. 언론이 더 추적할 필요를 못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라왈핀디에서도 일행은 짐짓 시간을 끌며 딴전을 부리다가 잠시 쉬겠다며 48시간 동안 사라졌다. 키신저는 몸이 불편하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잠적해버렸다.

바로 이 시간 동안 키신저 일행은 당초 목표였던 베이징으로 향했던 것이다.

베이징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중국 당국이 너무나도 느긋하게 키신저 일행을 맞이해 놀랐다.

역사적인 수교회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자들 사이에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일정도 말할 수 없이 느슨했다.

나중에 회고해 보니 이런 중국의 느긋함은 미국 측에 대한 심리적 압박 전술로 해석됐다고 키신저는 밝혔다.

이런 일이 있은 지 7개월 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공식 방문해 마오쩌둥과 역사적인 중-미 수교를 하기에 이른다.

키신저의 전기를 집필한 니올 퍼거슨은 뉴스위크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국에 관해'를 보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까지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게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키신저가 이 책에서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이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가운데 미-중 간 '세기의 대결'을 피할 지혜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키신저는 중국의 부흥이 국제적으로 양극 체제를 다시 만들면서 새 냉전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특히 중국 내부에 군사 강국을 추구해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민족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진영이 있고, 미국 워싱턴에도 대결 관계를 선호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강대국이 되는 방법으로 세계 1차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길을 가지 말자는 더 냉철한 이상을 가진 진영이 더 많다면서 중국과 함께 새로운 '태평양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미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회고록 출간에 맞춰 키신저 전 장관을 인터뷰한 CBS는 중국과의 역사적 수교, 베트남 전쟁 종전, 중동평화 조정자 역할 등 키신저가 없는 미국 외교사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평가했다.

키신저는 CBS와의 회견에서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사담 후세인(전 이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후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넘겼어야 했다"고 말했으나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을 훼손하는 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키신저는 이와 함께 이 회견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닉슨 전 대통령이 오명을 벗게 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하기 전날 밤에 만나 '역사는 동시대보다 훨씬 당신에게 우호적일 것'이라고 말해줬다"면서 "그는 외교정책에 있어 창조적이었고 결단력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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