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촌장 고집이 3000명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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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이마을 방조제 건설때 44년전 높이 15.5m 관철시켜이번 쓰나미때 1명만 실종

“촌장의 고집이 주민 3000명을 살렸다.”

동일본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여파로 초토화된 일본 동북부에서 이번 재난을 무사히 넘긴 조그만 어촌 마을이 있어 화제다. 이와테(巖手) 현 북부에 있는 후다이(普代) 마을로 이 마을을 지켜준 것은 해안과 하천에 나있는 높이 15.5m의 방조제와 수문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긴급 대피 지시에 따라 어항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일손을 놓고 방조제 위로 올라가 시커먼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발끝조차 젖지 않았다. 방조제 바깥쪽 어항은 쓰나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안쪽에서는 사람도 가옥도 모두 무사했다. 지진 직후 어선을 점검하러 간 주민 한 명이 쓰나미에 휩쓸려 행방불명된 게 인명 피해의 전부다.

이 마을에 15.5m 높이의 방조제와 수문이 세워진 것은 각각 1967년과 1984년. 건설비용이 모두 36억 엔이나 돼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 많은 돈을 쓸데없는 데 낭비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당시 와무라 고토쿠(和村幸得·사망) 촌장은 15.5m 높이의 제방을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 1860, 70년대에 15m 쓰나미가 마을을 덮쳤다는 역사적 기록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 또 1896년과 1933년에 두 차례 쓰나미로 439명이 숨진 적이 있기 때문에 새로 제방을 쌓는 마당에 같은 피해를 두 번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게 당시 촌장의 고집이었다.

실제로 후다이 마을과 인접한 다노하타(田野畑) 마을은 높이 8m의 제방을 2개나 쌓았지만 이번 쓰나미를 견디지 못하고 40명의 피해자를 내고 533채의 가옥이 파괴됐다. 또 ‘만리장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같은 현 미야코(宮古) 시의 높이 10m 높이 방조제도 유실돼 수백 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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