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기자의 눈]세계 유일 피폭국가의 남다른 원전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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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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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 특파원
윤종구 특파원
“피폭은 절대 안 돼.”

원전사고가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福島) 현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고향을 떠나는 엄마 아빠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TV 화면에는 어린아이를 동반한 엄마 아빠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16일엔 후쿠시마 지역 수돗물에서까지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탈출자들이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근 니가타(新潟) 현의 피난소는 후쿠시마에서 넘어온 ‘난민’들로 순식간에 만원이 됐다. 지진과 쓰나미에 어느 정도 ‘내성’이 붙은 일본인들도 원전사고엔 차원이 다른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16, 17일 원전에서 흰 연기가 뿜어 나오고 헬기가 물을 뿌리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자 공포는 극에 달했다. 정부와 원전회사의 대응이 오락가락한 것도 불안심리를 극도로 부추겼다. 사재기 심리도 급속히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로 그 참상을 눈으로 보고 겪어왔다. 1945년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의 원폭 피해자들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식 세대인 2세, 3세까지 고통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원전사고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공포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쓰나미 참사에도 침착과 배려를 잃지 않던 일본인이 원전사고 앞에서 허둥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후쿠시마 현에서는 5000여 명이 원전 주변 30km 대피선을 넘어 아예 현을 탈출했다. 몰려든 탈출 행렬과 이들에 대한 방사선 검사 및 오염 제거 작업으로 16, 17일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대혼잡을 빚었다. 현 당국은 원하는 주민은 모두 현 밖으로 대피시킬 방침이다. 이들이 떠나는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다. 똑같이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더라도 나이가 어릴수록 암 등의 치명적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최고 10배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렇다 보니 임신부들은 거의 대부분 “건강한 아기를 낳고 싶다”며 현을 떠나고 있다. 원전에서 20km 떨어진 미나미소마(南相馬) 시에 사는 스즈키 고메(鈴木孔明·32) 씨 부부는 어린 두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후쿠시마에선 아이들을 목욕시킬 수도 없고 데려갈 병원도 없다”며 “무엇보다 아이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도쿄에서
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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