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현실의 교차점’ 하버드대 노숙자쉼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0일 17시 12분


하버드 광장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방한복으로 무장한 학생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눈더미가 수북이 쌓인 붉은색 보도블록을 서둘러 지나가는 이들이 향하는 곳은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기숙사와 도서관이다.

같은 시각 대학내 유니버시티 루서런 교회의 지하로 연결되는 입구에는 야구모자를 쓴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견디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서성댄다. `하버드 광장 노숙자의 집'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 노숙자의 집은 매년 11월15일부터 이듬해 4월15일까지 매일 밤 세계 최고 명문대학의 학생들과 하루하루 생존 자체를 위해 허덕이는 사회적 약자들을 끌어모으는 곳이다. 미 전역에서 대학생들의 힘만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노숙자 쉼터이기도 하다.

미시간 주 블룸필드힐스 출신으로 이 시설의 공동 운영책임자인 조너선 워시는 "하버드대에 입학하고 나서 대학의 부(富), 명성, 권능과 소외계층의 곤궁한 삶이 이율배반적으로 공존하는 현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현재 4학년으로 보건정책을 전공하는 그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란다.

1983년 문을 연 이 쉼터는 하버드대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단지 하버드 광장한복판에서 대학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관리인 24명은 모두 하버드대 학생들이며, 이들 외에 20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있는데 이들도 대부분 대학생이다.

연간 6만 달러인 예산은 연방정부 및 주 정부의 보조금과 쉼터 자체의 모금활동, 자원봉사자의 동창생이 갹출한 기금 등으로 이뤄진다. 쉼터에는 24개의 침대(여성용 4개 포함)가 있지만 매일 밤 이보다 많은 노숙자가 찾아온다.

학생들은 자금관리와 식사ㆍ기부금 조달, 요리, 설거지, 청소 등 보호소의 모든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진다. 이곳에는 식당과 침실 외에도 작은 도서관과 컴퓨터, 샤워실, 세탁실, 부엌 등도 갖춰져 있다.

가족에게 노숙인 신분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을 케빈이라고만 소개한 남자는"(이들 대학생은) 대단한 친구들"이라며 "이 시설이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시설은 맨정신이거나 아이가 없는 노숙자만 수용하며 술에 취했거나 아이가 딸린 사람들이 오면 다른 보호시설로 보낸다.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후반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는 스콧 사이더 보스턴대 부교수는 이곳이야말로 이론과 현실이 만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곳은 지도력 개발의 현장"이라며 "학생들은 여기서 복잡한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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