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짓 그만” 英-러 외교관 맞추방 보복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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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외교 다시 먹구름

영국 정부가 최근 런던에서 스파이 활동을 해오던 러시아 외교관을 전격적으로 추방했다. 이에 발끈한 러시아가 자국 내 영국 외교관을 맞추방하면서 양국 외교 갈등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21일 “영국 주재 러시아대사관에 근무하던 외교관이 첩보활동을 한 명백한 증거를 찾아냈다”며 10일 그를 추방한 사실을 밝혔다. 헤이그 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는 러시아 정보기관이 영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해온 것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영국 정부는 러시아대사관의 다른 일부 직원도 러시아로 불러들일 것을 러시아 측에 공식 요청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에 맞서 6일 뒤인 16일 모스크바에 있는 영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을 추방했다. 왜 추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두 외교관은 각자 근무지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 상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문제의 러시아 외교관이 특정 인사에게 접근해 정보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선을 넘는 행동’을 했다고 전했다.

헤이그 장관은 이번 조치가 최근 불거진 러시아 미녀 스파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영국 정부가 미녀 스파이 사건 이후 러시아의 첩보활동에 경계 및 감시를 강화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국내정보국(MI5)은 이달 초 마이크 핸콕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 씨(25)를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카티아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이 여성은 하원의 국방특별위원회 소속인 핸콕 의원에게 접근해 국방 관련 정보를 빼내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영국과 러시아의 외교관계는 2006년 런던에서 발생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전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요원의 독살 사건으로 크게 악화됐다. 영국 검찰이 체제 비판적이었던 리트비넨코 독살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 정부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인 것에 대해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한 것. 용의자의 신병 인도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던 양국은 2007년 자국 주재 상대국 대사관 직원 3명씩을 추방하며 날카롭게 대립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내년 초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키로 하는 등 두 나라는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불거진 스파이 사건으로 양국 협력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다시 타격을 받게 됐다. 더구나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의 외교전문으로 영국 내 러시아의 첩보활동이 부쩍 강화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MI5는 영국에서 잠행하는 러시아 첩보원이 냉전 당시만큼 많은 35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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