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도발 이후 美온건파도 목소리 높여

  • 동아일보

■ “美대북 압박정책 한계” 직접대화 촉구

“북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평양은 무엇을 원하는지 미국에 계속 얘기해왔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후인 24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미 행정부에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과 직접 대화하지 않고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삼으며 북한을 압박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농축우라늄 시설 공개와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미국 내에서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강조하는 ‘대화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화파의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8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민관합동 대북정책조정회의를 주관한 자리에서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한반도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대북정책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런 목소리에 힘을 더했던 것은 7월 이뤄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었다.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를 데려오기 위해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강조하며 대북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면서 물꼬를 텄다.

이번에도 카터 전 대통령이 선봉에 나섰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7월 방북했을 때 북한 당국자가 ‘미국과의 양자대화가 이뤄지면 원심분리기 문제도 협상테이블에 올라오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밝혔다.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과 함께 최근 북한 영변 핵시설을 견학한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객원연구원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둘러보고 경제 제재를 근간으로 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22일자 기고문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지 일본과 한국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김정일 전기를 펴낸 칼럼니스트 마이클 브린 씨는 “남한이 북한 인근에서 사격훈련을 한 것이 북한을 자극했을 것”이라며 “조지워싱턴호의 서해 연합군사훈련은 바보 같은 짓으로 이번 조치는 북한 내부의 강경파를 자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민간전문가 자격으로 방북한 리언 시걸 미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소장도 “북한 고위 당국자들은 2000년 합의된 북-미 코뮈니케를 미국이 존중할 경우 모든 핵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북한의 목소리를 전했다. 천안함 폭침사건에서 북한을 거들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도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회견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이 결국 미국은 적이 아닌 잠재적인 친구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이때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연연해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 다니지 않고 원칙론을 고수하는 입장이 뚜렷하다. 국무부에서는 클린턴 장관과 제임스 스타인버그 부장관이 대북정책에서 강경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백악관에서도 제프리 베이더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원칙론을 고수하는 가운데 토머스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의 원칙론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대화파로 불리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성 김 북핵특사가 상대적으로 약체인 것도 원칙파에 밀리는 이유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소수”라며 “북한의 도발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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