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산호세 광산의 기적을 일군 주인공이 33명의 광원이라면 그들의 생환을 가능케 한 결정적 조연들이 있다. 우선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미국인 굴착기사 제프 하트 씨(40). 그는 광원들의 피신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하 622m 밑 구출통로를 뚫는 계획(플랜B)을 예상보다 두 달 앞당겨 성공했다. 칠레 정부조차 구조까지 4개월이 걸려 12월 크리스마스에나 가능할 것 같다던 구조작업이 7주 만에 마무리된 것은 순전히 하트 씨 덕분이다.
칠레 정부는 플랜A, B, C로 불리는 3개의 수직갱도를 별도로 뚫는 작업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는데 하트 씨의 플랜B가 가장 먼저 도달했다. 칠레 정부는 전 세계에 굴착기사를 수소문하다 물과 석유 시추작업을 하는 그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사용할 지하수를 파는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이미 업계에서 알아주던 굴착기 전문가. 칠레 정부의 부름을 받은 그는 자신이 이끄는 굴착팀과 함께 규토와 바위로 이뤄진 광산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업 33일 만인 9일 굴착기 T-130은 광원들이 머물고 있는 지하대피소 천장에 닿았다. 플랜B가 갱도 확보에 성공함으로써 광원들을 끌어올릴 구조캡슐 제조와 33명을 안전하게 지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광원들이 심리적 육체적인 안정을 취하는 데도 여러 손길이 동원됐다. 칠레 국영 광산회사는 지상과 지하를 잇는 통신시스템을 개발해 광원들이 가족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한 광원은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했고 다른 광원은 아내에게 결혼 후 못 갔던 신혼여행을 약속했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
또 의사 영양사 엔지니어 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미국항공우주국(NASA)팀은 칠레 정부의 특별 지원 요청에 응해 광원들에게 극한 상황과 오랜 시간의 고독에서 싸울 수 있는 비법을 전수했다. 광원들이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잠수함과 유사한 환경에 있을 것으로 보고 좁은 공간에서의 생존전략 노하우를 알려준 것. 광원들이 캡슐에 탈 때 입었던 의복도 신체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장비가 달린 우주비행사용(用)이다.
광원들의 식단과 건강을 관리했던 의사인 조르지 디아스 씨도 빼놓을 수 없는 조연. 그는 규칙적인 운동, 영양을 고루 갖춘 식단을 통해 저체중 영양부족 수면부족 등에 시달리던 광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규폐증(硅肺症)을 앓아왔던 마리오 씨는 의료팀의 엄격한 관리로 증세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광산 주변을 지키고 있던 광원 가족들에게 매일 500인분의 식사를 제공했다.
뉴욕타임스는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든 이번 구조작업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전문가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이 작업을 위해 들어간 긴장, 기대와 안도의 한숨의 총합을 따져보면 ‘아폴로13호’에 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밖에 현장 구조팀장을 맡은 토목기사 안드레 소가레트 씨를 비롯해 구조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지지율이 급상승한 라우렌세 골보르네 칠레 광업장관, 구출된 광원들과 일일이 포옹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광원들이 무사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하이메 마냘리 보건장관 등이 숨은 조연으로 꼽힌다. 구조가 진행되던 중 감정에 복받친 피녜라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흥분! 기쁨! 칠레 국민에겐 자랑스러움! 신께는 고마움!”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33’ 매몰 광원 33人, 칠레 새로운 행운의 숫자로… ▼
‘칠레에서 새로운 행운의 숫자는 33.’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광원들이 하나둘씩 무사히 빠져나오면서 지하에 갇혔던 광원의 전체 수인 33이 현지에서 복을 가져다주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칠레 사람들은 이번 사고가 여러모로 33과 연관이 깊다고 여긴다. 사고가 일어난 8월 5일은 올해 33번째 주(週)이며, 구조터널을 뚫은 T-130 굴착기는 광원들이 머물던 지하에 33일 만에 도착했다. 구조가 성공한 첫날을 여섯 자리로 표기할 경우 10년 10월 13일로 합치면 33이 된다.
살짝 억지스러운 의미 부여도 나왔다. 광원들이 처음으로 생존을 알린 쪽지의 메시지가 띄어쓰기를 합치면 33글자라든가, 현지 캠프에 등록한 외국 기자의 국적이 33개국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도 나돌았다. 코피아포 시내에서 광산까지 차로 전속력으로 달리면 33분이 걸린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어쨌든 칠레에서 33은 한동안 회자될 것으로 전망된다. 칠레 방송에 따르면 복권을 살 때 숫자 33을 고르는 시민이 많아졌다고 한다. 칠레 영화감독인 로드리고 오르투사르 씨가 이 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며 내놓은 제목도 ‘33인(the 33)’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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