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딸, 이민자에 칼 겨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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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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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라드 호주 총리 규제 강화
의원 시절엔 이민자 옹호

지난달 호주 최초 여성총리가 된 줄리아 길라드 총리(49·사진)는 1998년 첫 의원 당선 직후 의회에서 열변을 토한 적이 있다. 당시 호주 이민자를 골칫거리라고 비판하던 폴린 핸손 의원에 맞서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할 준비가 돼 있는지 알기나 하느냐”며 무섭게 몰아붙인 것. 그 자신이 이민자의 딸이기도 하다.

그랬던 길라드 총리가 6일 호주로 쏟아져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와 난민의 유입을 막겠다며 규제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는 이날 “동티모르나 뉴질랜드에 난민심사센터를 세우고, 보트를 통해 국내로 들어오려는 입국자들을 이곳으로 이송해 심사를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난민 밀입국 알선조직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정책 수정안도 내놨다.

호주에서 현재 불법 이민자와 난민의 증가 추세는 정권을 흔들 정도로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다. 케빈 러드 전 총리가 난민 규제를 완화하면서 최근 3년간 6500여 명의 입국 희망자들이 150여 대의 보트를 타고 호주로 몰려왔다. 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러드 전 총리는 지지율 추락에 시달리다 결국 물러났다.

호주 내에서는 정부가 과거 존 하워드 총리 시절의 ‘태평양 해법(Pacific Solution)’처럼 입국 신청자들을 해외에 체류시키면서 난민심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당시 난민들의 임시 거주지였던 나우루 섬이나 파푸아뉴기니 시설이 사실상 감금 수용소라고 할 만큼 열악해 인권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이번 수정안이 ‘장소만 바뀐 제2의 태평양 해법’이라는 지적에 대해 길라드 총리는 “유엔의 협조하에 시행할 예정이므로 기존 정책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호주의 난민정책이 급선회하는 것을 놓고 일간 인디펜던트는 “호주의 ‘철의 여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이민자에게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의 새 이민 정책이 앞으로 몇 달 안에 실시될 연방정부 총선거에서 표심을 잡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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