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코펜하겐]美-中 이번엔 ‘온실가스 감축 검증’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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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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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3국이 감시” 주장에 中 “주권 침해” 반발
135개 개도국, 회의 보이콧 선언 5시간 만에 철회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유엔기후회의)가 폐막을 사흘 앞두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특히 양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선진국이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처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를 놓고 날선 대립을 벌인 양국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검증 문제로 또 맞붙었다. 뉴욕타임스는 “양국의 대립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 中-美 팽팽한 줄다리기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 재정지원 문제에서 퇴보하고 있다”며 “이 같은 입장 변화는 코펜하겐 회의를 방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대변인은 “중국이 선진국으로부터 기후변화 대응 자금지원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외신보도는 오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 말은 선진국의 자금지원 대상에서 아프리카나 작은 섬나라와 같은 저개발국가가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지 중국이 제외된다는 뜻은 아니다”며 “중국이 국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지구환경보호에 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미국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대한 감시장치 마련 문제를 놓고도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미국은 ‘제3국’의 감시를 주장한 반면 중국은 주권에 관계된 문제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감시체제 수용을 거부한다면 미국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 움직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토드 스턴 미 기후변화 특사는 이날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며 선진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높여야 한다는 중국 등 개도국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코펜하겐에 도착 직후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부국과 빈국이 서로 손가락질하는 것을 즉각 중단해줄 것을 촉구했다. 반 총장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남을 비난할 여유가 없다”며 “협상안을 도출하기 위해 각국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중국 인도를 포함해 135개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14일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부족하다”며 코펜하겐 회의 보이콧을 선언했다가 5시간 만에 복귀했다.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치 분쟁에는 ‘주고받기(give and take)’식 협상이 가능하지만 기후변화와 같은 자연의 법칙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스티븐 추 미국 에너지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 선진국이 개도국에 청정에너지 기술 확산을 위해 향후 5년간 3억5000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개도국’ 한국의 전략


감축 목표를 자발적으로 발표하고, 선진국으로부터 아무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한국의 전략은 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스스로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인상을 줘 의무감축국으로 넘어오라는 여론을 최대한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평가다. 한국은 자율 감축량을 세계에 공개하기 위한 ‘개도국 감축 행동 등록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다만 원하는 국가만 등록에 참여시키고 그 외 국가는 스스로 감축량을 점검할 수 있도록 국가 보고서를 발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등록부에 스스로 줄인 온실가스 양을 등록하면 그 양만큼 선진국에서 필요한 제원과 기술을 지원받을 수 있는 ‘탄소 크레디트’ 제도의 운영도 함께 제안했다.

코펜하겐=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이러고도 국제회의냐”
회의장 좁고 운영도 주먹구구식
2000명 영하 날씨에 9시간 떨어


“Let me in(들여보내라)!” “Be patient(참아라)!”

현지 시간으로 14일 오전 8시(한국 시간 14일 오후 4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 회의장 ‘벨라센터’ 정문 앞은 비정부기구(NGO) 관계자와 기자 200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북새통이었다.

오전 9시, 잠깐 이들의 정상 출입이 시작됐지만 주최 측은 이내 아무 설명도 없이 출입을 중단시키고 문을 닫아 버렸다. 바깥 기온은 영하 3도. 눈이 조금씩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덴마크 기후변화 총회가 주먹구구식 운영과 무성의한 해명으로 전 세계 기자단과 NGO 관계자들의 격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오후 4시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자 참다못한 군중 사이에서 “Let me in”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를 본 총회 관계자가 “Be patient”라고 짧게 소리친 뒤 모습을 감추자 군중은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질서정연하던 줄조차 무너졌고 아수라장이 됐다.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아틀레 안데르센 기자는 “국제회의 취재를 여러 번 다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회의 운영이 형편없다”고 비판했다. 녹색연합 최승국 사무국장도 “회의와 보도시설, 각종 부대행사까지 한곳에서 모두 진행되다 보니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충분히 예상하고 미리 해결책을 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흥분한 군중에 놀란 덴마크 경찰은 경비 병력을 늘리고 경찰견 두 마리까지 입구에 세웠다. 하루 일정이 끝나는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종일 취재를 하지 못한 기자들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다. 주최 측은 일부를 들여보내다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수용인원 한계”라며 출입을 막았다. 끝내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독일 기자는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결말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고 화를 내며 발길을 돌렸다.

코펜하겐=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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