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 컨설팅 열풍

  • 입력 2009년 10월 6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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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 유학 온 K군은 올 여름 방학 때 서울에서 특별 컨설팅을 받았다. 미국 최고 학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공립학교 10학년(한국의 고교 1학년)에 다니는 K군은 당초 방학 때 인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운영하는 과학 캠프 참가를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할 때는 전문가가 짜준 대입 준비 전략이 필요하다"며 서울 강남 유학원에서 컨설팅을 받게 했다. 아이비리그(미국 동부 8개 명문대) 출신이라는 컨설턴트는 앞으로 수강할 AP(선행학습)과목, 액티버티(봉사·특기 등 과외활동) 목록을 짜줬다. 개인마다 원하는 학교에 따라 계획표를 만들어주는 맞춤형이었다.

해마다 방학이 되면 한국의 초중고생은 미국으로 영어연수를 오는 반면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 강남 등지의 SAT(미국 대학수학능력 시험) 학원 등에서 단기 집중과외를 받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미 양국에서 입시전략 컨설팅 특수까지 불고 있다. "높은 성적이라도 평범한 경력만으로는 합격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부는 현상이다. 아이비리그와 스탠퍼드 MIT 등 미 명문대의 입학 문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대학 진학 연령기를 맞은 데다 한국 중국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명문대보다 미국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급증하면서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보스턴 뉴욕 등 대도시에 늘어나는 입학전략 컨설팅 업체 가운데는 한국 학생을 상대로 한 곳이 많다. 부산의 중학교에 다니는 L군은 여름방학 때 900만 원(비행기 요금 제외)을 내고 뉴욕의 한 컨설팅 업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업체가 소개해준 서머캠프들에 참여하면서 간간이 컨설팅을 받는 두 달 기간의 프로그램이었다.

펜실베이니아대 석사 과정의 한국인 유학생들과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이 함께 운영하는 한 업체는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짜줄 뿐 아니라 방학 때면 한국에서 컨설팅 대상 학생을 '뽑아'온다. 아무나 돈만 낸다고 컨설팅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비리그 진학 잠재력이 보이는 학생들만을 받아준다.

미국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업체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보통 9학년(중3)부터 시작해 연간 2~4만 달러를 받는다. 인터뷰와 성적표, 그동안 읽은 책의 목록, 구독 잡지, 자원봉사 경력 등의 종합 정보를 토대로 50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든다. 그리고는 장단기 계획을 짜서 과목 선정부터 단어장 작성법 등 세세한 항목까지 코치해준다.

일부 업체는 에세이 작성까지 도와준다. 다트머스대 입학사정관 출신인 미셸 헤르난데즈 씨는 공영라디오방송(NPR)에 출연해 "2008학년도 다트머스대 입시에서 입학사정관들이 가장 우수하다고 꼽은 에세이는 내가 도와준 것"이라고 고백해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시카고 대학의 테드 오닐 입학 담당 부학장은 "부정행위"라고 비판했다.

고액 컨설팅이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또한 입학사정관들이 정말 중시하는 것은 세련되게 다듬어진 에세이나 SAT 만점, 잘 꾸며진 특기활동 경력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열정을 갖고 오랜 기간 일관되게 노력했는지라는 지적도 많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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