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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2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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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0일 대구 신서지구와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2곳을 첨단복합의료단지로 선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은 일단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당초 사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보다 20년 이상 먼저 의료복합단지를 만들었지만 예산을 여러 프로젝트에 분산 투입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복합단지’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미국을 벤치마킹했다. 미국은 1970년대 말부터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휴스턴, 샌디에이고, 워싱턴, 시애틀을 중심으로 의료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휴스턴 텍사스메디컬센터는 암과 심혈관 질환 치료 분야로 특화해 텍사스 경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보스턴 단지의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은 관절염 치료제 ‘엔프렐’을 개발해 매년 막대한 특허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미국의 의료복합단지 성공에 자극받은 제약회사들을 중심으로 복합단지 조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지역경제를 살리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겠다’며 1987년 ‘바이오기술 국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롬바르디아 지역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원래 대형 제약회사와 바이오기업이 밀접해 있는 데다 이 지역 최대 도시인 밀라노에 의료연구기관이 몰려 있어 최적의 조건이었던 것. 1990년대 초 이탈리아 내 바이오기업의 49%와 의료연구기관 42.6%가 이 지역에 상주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했다. 유럽특허권사무소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롬바르디아 의료복합단지가 조성된 후 이탈리아가 특허권을 신청한 바이오기술 건수는 90여 건에 불과해 1990년대 이전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또 단지 내 고용인원도 1800명에 불과해 영국 케임브리지 첨단단지(1만2000명)나 독일 뮌헨단지(3750명)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도 적었다.
美, 특허권 보장-인센티브 제공으로 성공
전문가들은 가장 큰 실패 요인으로 ‘정부의 나눠주기식 할당’을 꼽았다. 정부가 지원금을 작게 나눠 여러 프로젝트에 지원한 데다 연구개발(R&D) 비용과 관련한 지원 기준이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아 조금이라도 더 지원금을 타내려는 제약회사의 로비가 성행했다.
단지 내 기업과 대학들 간에 벌어졌던 갈등도 한몫을 했다. 기업과 대학 간 산학연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1994년 설문조사에서 바이오산업을 연구하는 대학의 50% 이상은 ‘학교가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기업과의 R&D 공유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은 제도적으로 연구기관과 대학의 특허권을 보장해주며 연구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하고 있다. 바이오 열풍이 불던 1980년에 연방정부 지원으로 개발된 기술의 특허권을 대학이나 비영리기관에 주는 ‘베이돌 법안(Bayh-Dole Act)’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힘들여 기술을 개발해도 특허권을 인정해주지 않아 연구자들의 불만을 샀다.
이학종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은 “정부가 단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첨단의료복합단지의 효과를 볼 수 없다”며 “목적이 비슷한 제약·병원·학교가 연대를 맺고 정부가 경영·기술 노하우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