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엔 ‘피플 파워 ≠ 민주화 시위’

입력 2009-07-15 02:59수정 2009-09-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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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중산층이 거리로… 서민정책 지도자에 도전… 民-民 충돌

이란의 대선 불복시위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민족충돌, 온두라스 군부 쿠데타를 둘러싼 국민들의 찬반시위….

지구촌 곳곳에서 연일 벌어지는 시위는 ‘피플 파워(people power)’의 힘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피플 파워=민주화 시위’라는 옛날 등식과는 사뭇 다르다.

○ 시위의 주역은 신(新)중산층

한국의 ‘넥타이 부대’가 상징하듯 과거 민주화 시위는 중산층이 주역이 되어 서민 빈곤층과 결합했지만 요즘 벌어지는 시위들은 중산층이 주도하며 오히려 빈곤층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부패를 둘러싸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태국이 대표적이다. 도시 엘리트와 중산층이 주축이 된 시위대가 농민과 서민층을 대변해 온 탁신 전 총리 반대 시위에 나선 것. 온두라스의 경우 쿠데타로 축출된 호세 마누엘 셀라야 전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을 향해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의 쿠데타”라고 비난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편 과거 민주화라는 ‘명분’을 위해 움직였던 중산층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강타로 상대적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것도 시위 촉발 계기가 됐다. 시사주간 타임은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의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위구르족의 상대적 박탈감이 한족과의 충돌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아바스 아마낫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 시위는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50%에 불과했던 도시민의 비율이 80%가 넘는 상황에서 이들의 정치 사회적 자유, 성차별 철폐, 외부 세계에 대한 개방 열망이 누구보다 높아진 데서 촉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 서민 정책 표방해도 ‘독재’는 노(No)

이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종교·외교정책은 보수 우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석유자원 국유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표방해 왔다. 온두라스 셀라야 전 대통령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회주의 노선을 추종했다. 이들은 모두 서민 지향적 정책을 펴 온 지도자이다. 그러나 집권 연장을 꾀하다 대규모 저항에 직면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메리 오그래디 씨는 “대다수 온두라스 국민은 남미 좌파 지도자의 기수 차베스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책과 장기집권 전략을 추종해 온 셀라야 대통령의 축출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며 “반(反)셀라야 시위대는 ‘우리는 자유롭고, 발전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전했다.

○ 바람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시위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연결한 단문 블로그 서비스인 ‘트위터’는 미디어 통제가 심한 이란, 중국 시위에서 위력을 떨쳤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위대들은 트위터 메시지에 따라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졌다. 그러나 강력한 지도부가 없다 보니 시위대 간에 곧바로 맞불시위가 벌어진 것도 특징이다. 이란에서는 반정부 시위에 맞서 이내 친정부 시위대가, 중국에서는 위구르족 시위에 맞서 한족이 바로 보복 시위를 했다. 온두라스에서도 쿠데타 찬반세력 간 유혈충돌이 벌어지고, 태국에서도 탁신 전 총리에 대한 지지-반대세력이 잇달아 세력 대결을 펼쳤다. 이러다 보니 시위대들은 군부의 강경진압에 금세 동력을 잃고 사그라졌다.

안승국 비교민주주의연구센터 부소장은 “1980, 90년대 한국, 필리핀 ‘민주화 물결’은 정권 교체, 체제 변경 등 단일한 플랜을 갖고 진행됐다면 최근 이란과 중국 등의 시위는 종교, 민족, 계급 등 체제 내부의 다양한 분열적 요소가 충돌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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