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기침체로 사회안전망 ‘흔들’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의료보험 2017년 파산, 사회보장기금은 2037년 바닥”
기금이사회“재정 심각”보고서
오바마 의료개혁 차질 예상

경기침체의 여파가 미국의 사회안전망을 흔들고 있다. 미 사회보장제도의 주요한 축을 형성하는 의료보험(메디케어)과 사회보장기금이 예상보다 빨리 고갈되고 있다는 정부의 진단이 나온 것.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의료보험 개혁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 “8년 내 파산”

4500만 명의 고령자 의료보험을 책임지는 메디케어와 사회보장기금 운영이사회는 12일 연간 보고서에서 “재정상태가 예상보다 빨리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메디케어는 2017년이면 파산 상태에 이르고,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사회보장기금도 2037년이면 바닥이 드러나게 된다. 이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전망했던 고갈 시기보다 각각 2년, 4년 더 앞당겨진 것이다.

주요한 원인은 지난해 금융위기로 심화된 경기침체. 2007년 12월 이후 미국에서 모두 570만 명이 일자리를 잃어 현재 실업률은 8.9%에 이른다. 경기회복이 빨라야 내년부터 가능하다는 전망 속에 실업률은 조만간 1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세금을 내지 못하는 실직자가 늘면서 이를 바탕으로 운영해오던 기금의 재정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 재원의 대부분은 근로자와 고용주 임금의 최고 15.3%에 이르는 세금으로 충당돼 왔다.

반면 지급대상인 수령자는 더 늘어난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은퇴시기에 접어들고 있어 메디케어 대상자는 향후 10년간 30%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1인당 평균 메디케어 지출은 같은 기간 1만1000달러에서 1만7000달러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계산됐다. 기금재정의 악화는 향후 납입해야 할 세금부담이 더 높아지는 동시에 수령액은 더 적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기금 고갈은 경제위기에 부딪힌 은퇴(예정)자들에게 또 다른 타격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날선 의료 개혁 공방

이번 보고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 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에 불을 붙였다. 오바마 정부는 이미 금융권 구제와 거액의 경기부양안 집행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 때문에 야당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5000만 명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확대하는 정책을 펴는 것에 공화당은 못마땅한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내고 “미국이 이 무모한 지출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고서가 입증했다”고 질타했다. 같은 당의 톰 프라이스 하원의원도 “더 유지되기 어려운 정부의 의료 프로그램으로는 의료비를 낮출 수도,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 AP통신 뉴욕타임스 등은 “이번 보고서가 오바마 정부의 정책 추진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보고서를 의료 개혁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역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피트 스타크 하원의원은 “이번 보고서는 시급한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맞섰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앞으로 이 문제는 주요한 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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