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유적 도시 한순간에 폐허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4월 7일 02시 54분


伊 중부 어제 새벽 6.3 강진… 주택 1만여채 붕괴-이재민 5만여명

“자고 있는데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 벌떡 일어났어요. 지진이라는 직감이 들어 무작정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죠.”

얼굴과 온몸이 눈물과 잿더미로 뒤범벅된 대학생 안토니오 디오스틸리오 씨(22)는 담요를 뒤집어쓴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기숙사에 친구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다른 학생들도 삼삼오오 모여 서로 부둥켜안고 구조대원들의 구조 활동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모습이 자다가 황급히 뛰쳐나온 당시의 다급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듯했다.

AFP 등 외신과 이탈리아 당국에 따르면 6일 오전 3시 32분(현지 시간·한국 시간 6일 오전 10시 32분) 이탈리아 로마에서 동쪽으로 85km 떨어진 아브루초 주에 강진이 덮쳐 최소 100여 명이 숨졌고 1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대학 기숙사와 주택 등 1만∼1만5000여 채의 건물이 붕괴돼 사상자와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재민이 최대 5만여 명에 이르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크게 부족한 상황. 귀도 베르톨라소 아브루초 주 시민보호국장은 “2000년 이후 최악의 참사”라면서 “피해 복구에 몇 주,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당장 오늘부터 이재민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리히터 규모 6.3으로 최근 수년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진의 여파가 워낙 세 로마 주택가에서도 진동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브루초 주 내 주요 도시들은 아펜니노 산맥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리적 단점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 특히 주의 중심도시인 8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라퀼라는 성당의 돔을 포함해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의 건물과 유적이 크게 훼손됐다. 또 인접 도시인 카스텔누오보 역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아브루초 주는 구조장비가 충분치 않은 데다 부상자를 수용할 병원과 의사마저 부족해 구호 활동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아브루초 주와 인접한 움브리아 주 주민들은 여진이 이어질지 경계하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AP 등 외신은 전했다. 움브리아 주는 1997년 9월 강진이 발생해 10명이 숨지고 중세 건물과 교회가 무너지는 등 대규모 지진 피해를 본 바 있다. 또 2002년 10월에는 이탈리아 중남부 몰리세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28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재민 구호 및 조난자 구조 등 대책 마련에 나서는 한편 러시아 방문계획도 취소했다. 또 로마 교황청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날 라퀼라 교구 담당 대주교에게 보낸 위로 전문에서 “강진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명복을 빌었다”고 밝혔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