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개혁 내 입맛대로” G20 이틀 앞두고 각국 기싸움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실업자 - 빈민구제에 관심을”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지인 영국 런던에서 28일 한 시위 참가자가 달러화로 만들어진 괴물이 지구를 삼키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시위대는 다음 달 2일 열리는 G20 정상회의가 실업자 및 빈민 구제, 환경문제 해결 등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런던=EPA 연합뉴스
“실업자 - 빈민구제에 관심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지인 영국 런던에서 28일 한 시위 참가자가 달러화로 만들어진 괴물이 지구를 삼키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시위대는 다음 달 2일 열리는 G20 정상회의가 실업자 및 빈민 구제, 환경문제 해결 등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런던=EPA 연합뉴스
■ 국제금융질서 새판짜기 5가지 쟁점

금융감독 기준 강화하되

BIS비율은 탄력 적용

위기 부른 장외파생상품

투명성 높일 새 기구 추진

금융사 ‘탐욕’ 방지책 낼듯

다음 달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제2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국제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틀’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 G20 기획단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G20 정상회의에서 제시된 장단기 실천과제에 대해 회원국 실무작업반의 검토가 대부분 끝났다”면서 “20개국 정상들은 국제금융 체제 개편의 실천계획 등이 담긴 보고서를 채택해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국제 금융시장의 패권을 유지하면서 개선책을 찾으려는 미국과 금융위기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제기해 주도권을 뺏으려는 중국 등 신흥국들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는 정부의 G20 자문기관인 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이번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5대 핵심 쟁점을 선정하고 논의 결과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점검했다.

[1] 국제금융기관 개혁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은 G20 회의의 최대 쟁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30일(현지 시간) “IMF의 운영 시스템을 자국(自國)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혁하려는 주요국의 경쟁이 치열하다”며 “미국은 ‘IMF 기능 강화’를 이번 회의의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고 보도했다.

G20 정상들은 IMF의 재원확충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IMF의 긴급구제금융 대출기능을 강화하려면 충분한 ‘실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2500억 달러 수준인 IMF 재원을 5000억 달러로 늘리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유력 신흥국은 이 기회에 IMF의 ‘서방 편향적’ 의사결정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은 자국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IMF 분담금(쿼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2] 금융감독 강화 및 규제 개선

금융감독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도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각국 은행이 2007년부터(한국은 2008년부터) 종전보다 강화된 은행감독기준인 ‘바젤Ⅱ’에 따라 위험관리를 하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취약점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장욱 연구위원은 “바젤Ⅱ는 신용, 시장, 운영 등 세 가지 분야만 위험관리를 하도록 했지만 이번 회의 이후에는 유동성, 거래 상대방에 대한 위험관리가 새로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전반적인 규제강화 방향과 달리 금융회사의 대표적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경기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토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기준을 강화해 유동성 거품을 방지하되, 요즘처럼 경기가 나쁠 땐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해 과도한 경기추락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은행권에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을 독려해 경기회복 시기를 앞당기려는 한국은 특히 BIS비율 기준 조정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3] 금융회사 보상체계 재설계

금융회사 경영진의 ‘탐욕’을 억제하기 위해 보상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방안도 G20 보고서에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파산위기에 몰렸던 AIG 등 미국의 금융회사가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살아남은 뒤 임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하려다 공분(公憤)을 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노희진 선임연구위원은 “보상기준을 단기 실적보다는 주주의 이익과 기업의 장기 실적, 위험관리 능력에 연동시키는 방안이 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에서도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의 실적을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국 금융당국도 보상시스템 개편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G20 회의 결과는 국내 금융권의 보수지급 관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4] 장외파생상품 청산소 설립

미국발 금융위기의 출발점인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장외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청산소를 설립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CDS는 미국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와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 몰락의 원인을 제공해 세계 경제를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주범(主犯)으로 꼽힌다.

CDS 청산소가 설립되면 거래의 투명성이 높아져 ‘상품 범람’을 막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남길남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국도 장외파생상품과 관련해 많은 손실과 분쟁을 겪으면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며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G20의 노력에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 신용평가기관 감독기구 도입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회사가 자의적으로 신용을 평가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제재를 강화하는 대책도 나온다. 신용평가회사들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파생된 금융상품의 위험도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해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고 피해 규모도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유럽연합(EU)은 신용평가회사를 실질적으로 감독하기 위해 ‘신용평가 감독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직접적 규제에 거부감을 보여 진통이 예상된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1차 정상회의 이후 새로 만든 보호무역조치 철폐를”

李대통령 제안 방침

한국은 제2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영국 브라질과 함께 공동 의장단의 일원으로 참석한다. 브라질은 지난해, 영국은 올해, 한국은 내년에 각각 의장국을 맡고 있어 세 나라는 ‘G20의 트로이카’로 불린다.

이번 2차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역할은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차 정상회의 때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양대 어젠다인 세계경제 회복 및 국제금융시스템 개편 방안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이런 예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세계경제 회복 방안으로 거론되는 반(反)보호무역주의에 대해 한국의 의견을 적극 개진할 방침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차 정상회의 이후 세계 각국이 도입한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철폐해 원점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최희남 기획재정부 G20 기획단장은 30일 “2차 정상회의 보고서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새로운 무역장벽 설치 여부를 점검해 발표하는 방안도 담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정상회의가 열리는 영국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선언해 보호무역주의 저지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선진국 vs 中 - 러 - 브라질

기축통화 전쟁

신흥강국 “달러 대체할 새 통화 필요” 공세

선진국 “달러체제 흔들리면 손해” 방어전

미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기축통화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는 사태를 내심 걱정하고 있다. 기축통화 문제를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달러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균열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 문제를 놓고 이미 기(氣) 싸움에 들어갔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이달 중순 “미국에 투자한 자산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한다”며 포문을 열었고, 최근엔 저우샤오촨(周小川) 런민(人民)은행장이 “달러의 대안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공용통화로 격상시키자”고 제안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불필요한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중국의 ‘달러 흔들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중 양국의 달러 논쟁은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글로벌 세(勢) 대결’ 양상으로 확산됐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달러화를 대체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며 중국 편을 들었고, IMF도 “새 통화에 대한 논의가 적절하다”고 거들었다. 러시아 역시 “IMF가 새로운 기축통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 등 기존 선진국들은 여전히 달러화가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구도가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G20 회의에서 이 문제가 부각되는 것도 꺼리고 있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 강국들은 “이번 금융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이 기회에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달러화로 보유한 이들 국가로선 미국의 경기부양책으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해 엄청난 자산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불만이다.

반대로 미국은 기축통화 논쟁에서 밀리면 달러화 가치 하락을 우려한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줄여 산더미 같은 경상수지 및 재정적자를 지탱하기 힘들어진다. 특히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집행해야 하는 처지에서 달러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으면 국채 발행이 난관에 봉착하고 재원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 각국이 외환보유액을 달러화로 채우기를 기피하면 미국의 국제 정치력에도 큰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한국은 일단 양측의 세 대결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대체할 통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외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이 인위적으로 달러 체제 붕괴를 앞당겨 얻을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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