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브라운 총리의 굴욕

  • 입력 2009년 3월 30일 03시 02분


“재원 멋대로 써 경제 악화”

유럽의회서 집중포화 맞아

“총리, 당신이 경제위기 앞에 무능력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소. 당신은 제멋대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그나마 얼마 남지도 않은 재원을 방탕하게 쓰고 있단 말입니다.”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의 호스트가 될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사진)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25일 유럽의회에서 영국 토리당 소속의 대니얼 해넌 의원으로부터 경제위기 대응 문제와 관련해 집중 포화를 맞았다.

해넌 의원은 “당신이 (대규모 경기부양안으로) 우리 돈을 바닥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영국의 모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2만 파운드의 빚을 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또 “부채에 의존하는 이런 비효율적 대응이 난센스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안다”며 “영국은 불황을 맞은 모든 국가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퍼부었다. 그가 브라운 총리를 쏘아보며 “당신은 헐값 된 정부의 헐값 총리”라고 발언을 끝내자 회의장에는 큰 박수가 쏟아졌다. 3분 넘게 계속된 해넌 의원의 신랄한 발언, 그리고 민망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메모하는 브라운 총리의 모습은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서 29일 현재까지 15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전 세계 누리꾼들의 댓글도 1만 건 이상 달렸다.

브라운 총리는 29일 칠레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칠레는 어려운 시절을 대비해 재정을 축적해둔 덕분에 감세 정책을 쓸 여유가 있다”고 말해 결과적으로 영국을 겨냥한 셈이 된 것. 앞서 브라운 총리는 이달 초 미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도 홀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 위상이 추락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심각한 영국 경제 상황이 G20을 통해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하려는 브라운 총리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28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에서 경제위기 책임자를 질타하고 일자리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런던에서만 3만5000명이 집결했다. 영국 경찰은 정상회의가 열리는 날에는 시위대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비상 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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