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주류사회 ‘코리안 女風’ 매섭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일 02시 59분



당찬 30대 여성들 “한인사회 넘어 미국 경영” 정부-대학 등 진출
○ 그레이스 정 베커 법무부 민권담당 차관보로 인권업무 총지휘
○ 석지영 연방대법원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 첫 한국계 교수
베치 김 - 헬렌 홍 - 수 테리 등 오바마 백악관서 활약

“우리는 ‘미국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Let's be part of it)’. 그러려면 미국을 끌어가는 경영진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2002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블루벨 시의 한 심포지엄. 미모의 33세 한국계 여성이 “열심히 공부하라. (졸업 후엔) 워싱턴으로 오라”며 한인 2세 후배들에게 연방정부에 진출할 것을 격려하고 있었다. 당시 연방정부 노근리 사건 특별조사단 자문관을 거쳐 양형(量刑)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던 그레이스 정 베커 씨. 5년 뒤 법무부 민권담당 차관보가 돼 현재 미국 내 인권 보호 업무를 총지휘하고 있다.
한국계 여성들이 미국 주류사회에 우뚝 서고 있다. 200만 교민 시대에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 전문직 종사자도 숱하게 배출됐지만 대부분 한국, 한국인과 연관된 일을 했던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 대학 등 미국 사회 핵심에 도전하는 2세가 많다. 그중에서도 30대 여성들이 눈부시다.



하버드대 로스쿨 석지영(35) 교수는 예일대를 거쳐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전공을 법학으로 바꿨다. 2003년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후 연방대법원 판사실 서기와 뉴욕 검사실을 거쳐 모교의 최초 한국계 교수가 됐다. 최근 로스쿨 학생들이 뽑은 최고 교수 2위에 뽑히기도 했다.
이들은 1960, 70년대 이민가정 출신으로 엘리트 교육과정을 거쳤으며, 돈보다는 ‘사회적 성취’와 ‘일의 보람’을 중시하는 커리어를 밟아 왔다는 게 공통점이다.
공교육 개혁의 상징으로 부각된 미셸 리(이양희·39) 워싱턴 교육감도 코넬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뒤 대도시 빈민가 공교육을 살리는 활동에 뛰어들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인수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리더를 지낸 오드리 최(최경옥·41) 씨는 월스트리트저널 독일 특파원을 거쳐 1996년 백악관 펠로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이어 부통령실 자문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실 참모실장, 상공부 전략정책 국장 등 화려한 경력을 쌓은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오바마 백악관에도 여러 한국계 여성이 일하고 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아시아태평양계 담당 부국장으로 대선 때 아태계 유권자 조직에 앞장섰던 베치 김 변호사는 백악관의 국방부 연락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법무부 소속 변호사인 헬렌 홍(31) 씨는 최근 백악관 법률고문실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일본 담당보좌관 바로 아래 직급에는 수 테리(김수미·37) 씨가 일하고 있다. 테리 씨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일해 온 1.5세다.
이들은 다들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강조하고 있다. 베커 차관보는 최근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 주최 세미나에서 “끈끈한 가족간의 유대, 공동체적 지원, 엄격한 근로윤리 같은 한국적 가치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이들을 키운 엄마들
“돈보다 자기실현 강조, 독서-여행 폭넓게 시켜”
“지영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민 왔는데, 올 때 한국에서 아동문고를 몽땅 가져왔어요. 차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매일 걸어서 동네 도서관에 데려갔지요.”
석지영 교수의 어머니 최성남(61) 씨는 지난달 30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딸을 키우면서 책을 많이 읽게 해 주고 돈보다는 자기실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가족 여행을 다니며 많은 걸 보도록 했고, 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말리지 않고 시켰다고도 강조했다. 석 교수의 아버지는 뉴욕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어머니 최 씨는 글로벌어린이재단 뉴욕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레이스 정 베커 차관보의 어머니 임정원 씨는 “딸에게 특별히 해 준 것은 없고 단지 부모가 정직하게 성실히 사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만을 바랐다”고 말했다. 1964년 이민 온 임 씨 부부는 지난해 4월까지 34년간 뉴욕에서 옷, 잡화를 취급하는 소규모 백화점을 운영했다.
임 씨는 “부모가 매일 12시간씩 일하니까 딸은 집에서 혼자 공부해야 했다”며 “‘인생을 사는 데는 돈보다 평판(reputation)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해 줬다”고 전했다.
딸 베커 차관보는 “부모님이 가장 큰 멘터였다”며 “두 분 모두 열심히 일하셨다.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과 열린 기회를 주기 위해 희생하신 것에 한없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베커 차관보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오린 해치 상원의원은 “부모는 성실한 근로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 줬으며 딸은 부모의 가르침을 따랐다”며 “베커 차관보의 삶은 성실성, 교육, 진지함 같은 성품이 열매를 맺은 아메리칸드림 자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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