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러시아 교민 잇단 범죄피해

  • 입력 2009년 1월 16일 16시 30분


(박제균 앵커) 해외에 사는 한국 교민들이 폭행을 당하거나 테러로 숨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구나 피해가 난 뒤 사건의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 지역에 사는 교민들은 더욱 불안에 떨 것입니다.

(김현수 앵커)올해 들어 모스크바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한국 여대생이 화염 테러를 받은 일도 일어났는데요, 수사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의 정위용 특파원을 연결해보겠습니다.

(박 앵커)정 특파원, 러시아는 치안이 불안한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수사에 진전은 있나요.

(정위용)러시아 경찰은 아직도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지난 2일 화염 테러를 받은 학생은 화상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러시아 괴한은 길을 가던 이 학생의 등에다 인화 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이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러시아 경찰은 목격자를 상대로 범인을 찾고 있지만 범행이 해가 진 저녁 시간에 일어난 데다 범인을 추적할 만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부에선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을 통해 기대를 걸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앵커)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다른 피해를 본 교민들도 많습니까?

(정)그렇습니다. 러시아 범죄단체 스킨헤드의 소행으로 보이는 범죄가 작년부터 늘어 한국 교민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모스크바 남부 지역에서 귀가하던 공무원 연수생이 괴한으로부터 둔기에 얻어맞은 것을 비롯해, 자영업을 하는 한 교민은 아침에 식품 가게에 들렀다가 폭력배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두 달간 치료를 받은 일도 발생했습니다.

2007년 2월에는 폭력배들의 집단 폭행으로 유학생 이모 씨가 숨졌습니다. 이씨는 당시 대낮에 집밖으로 나갔다가 러시아인 네 명으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했습니다. 이씨는 한 달 뒤 폭행 후유증으로 숨졌습니다.

지난 2일 한국 교민에 대한 화염 테러는 과거에 등장하지 않던 잔인한 수법으로, 인종 혐오 범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인권단체들은 특히 작년 9월 금융위기 이후 인종 혐오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범죄에 가담한 러시아인들은 금융 위기로 실업자가 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 앵커)한국인에게 저지른 범죄 가운데 범인이 붙잡히거나 진상이 밝혀진 사건이 있습니까?

(정)96년 10월 최덕근 영사 피살 사건 이후, 단 한 건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2007년 숨진 이 씨의 어머니와 같은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 길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이 씨 추모 1주기 행사에 참석했던 한 학생은 "타국에서 동료가 숨진 뒤 해준 일이 없어 미안한 생각만 들었다"며 울먹였습니다.

현지 교포들도 누가 범인인지, 무엇이 잘못 됐는지, 모른 채 범죄 재발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교포들 사이에선 '러시아는 범죄가 있어도 그대로 땅속에 묻히는 사건 암장 지대'라는 얘기까지 돌고 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이런 사건을 통해 형사 공조 체제를 다지지도 못했습니다.

(김 앵커)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우선 러시아 당국의 진상 규명 의지와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경찰은 작년 인종 혐오 범죄가 120건을 넘었지만 이런 범죄를 단순 폭행 사건으로 분류하고, 수사를 뒷전으로 미뤄놓거나 미온적으로 대응해왔습니다.

이 씨가 숨졌을 때 수사권도 없는 주러 한국 대사관 측은 각종 채널에서 수집한 조사 자료를 거꾸로 러시아 당국에 보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다할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사법부 역시 어쩌다 한 번씩 붙잡히는 범인에 대해 형량을 낮추거나 재판을 지연했습니다.

러시아의 늑장 대응과 무성의한 수사도 문제지만 한국 정부의 관행적인 대응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대사관은 이번에도 러시아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문서를 보내는 한편 대사관 직원들이 관할 경찰서와 모스크바 시경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사관의 노력만으로 러시아 당국의 태도가 바뀔지는 의문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일각에선 폭행 사건이 외교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해 한국 정부가 강력한 진상규명 촉구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교민들은 이번에 한국 외교부가 직접 나서 암장된 사건의 진상이 하나라도 밝혀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스크바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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