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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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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 가족 중시-총기보유 옹호 등 ‘脫진보’ 색채
일부선 “당분간 진보정책 추진 힘 실릴것” 분석도
대선 참패로 힘 잃은 보수측, 향후 진로 놓고 고심
1990년 어느 일요일 미국 하버드대의 파운드홀. 아침부터 시작된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 선출 회의는 리얼리티 TV쇼 그 자체였다.
편집위원들은 선거에 출마한 19명을 대상으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이며 한사람씩 탈락시켰다.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 대부분 백인이던 편집위원들은 두 명의 후보 중 보수파인 다른 백인 학생을 제치고 진보적 성향의 흑인 후보를 선택했다.
오늘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하버드 로 리뷰’ 최초의 흑인 편집장으로 선출된 순간이었다.
당시 편집위원이었던 브래드퍼드 베렌슨 씨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떤 것이든 우리는 그가 공정함을 잃지 않을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오바마라면 보수파들의 주장도 배려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뉴욕타임스 2007년 1월 28일자)
18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정치지형도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실정으로 보수주의 퇴조가 분명해지면서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정치지형의 변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 진보세력의 장기 집권의 서막이 오른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의 예상과 달리 진보보다는 중도 노선이 향후 오바마 행정부의 지향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진보주의 장기집권 서막인가?=저명한 역사학자인 고 아서 슐레진저 2세는 일찍이 미국의 정치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시기를 오간다고 진단한 바 있다.
미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그네타기와 같은 시대적 흐름의 변화가 잘 드러난다.
우파 시대를 열었던 1800년의 ‘제퍼슨 혁명’→도시빈민층에 기반을 두고 연합세력을 규합한 앤드루 잭슨의 1828년 ‘잭슨 민주주의’→노예제 반대를 내세운 에이브러햄 링컨의 1860년 선거 승리→진보정권 시대를 개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보수주의 이념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며 정점으로 이끈 로널드 레이건의 ‘레이건 혁명’ 등이 그것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탐구해 온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7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역사에 남을 2008년 선거가 실질적인 정책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오바마 당선인이 진보주의 정책의 새 시대로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사설에서 “오바마 당선인의 승리가 과거 시대사적 흐름 변화를 이끌어냈던 것 같은 미국 정치사의 이념적 재편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오바마 당선인 스스로 총기 소지권을 옹호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등 진보주의 이념을 대변하지 않고 이념적 혼합 성향을 보였다”며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그가 우파에서 좌파로 이동하는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변화를 반영한 중도주의 노선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5일 “새 대통령은 한쪽이 아닌 중도의 위치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당분간 진보적 정책 추진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뉴딜정책과 같은 성공 신화를 만들어낸다면 새로운 형태의 진보주의가 득세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힘을 잃은 보수주의=한때 ‘우파의 나라(Right Nation)’로 불렸던 미국에서 보수주의 그룹은 이번 대선 참패를 계기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의 보수 지형은 1968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보수 논객 패트릭 뷰캐넌과 함께 ‘새로운 주류’를 표방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이건 시대에 절정을 이뤘던 보수주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의 득세, 부시 행정부의 실정 등으로 이젠 힘을 잃었다.
문제는 미국의 보수세력이 선거 실패 이후 향후 진로에 대한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5일 유에스에이투데이에 따르면 공화당 예비경선에 나섰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이번 참패는 공화당이 기본적인 원칙을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정통 보수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러나 유벌 레빈 전 백악관 국내정책보좌관은 “보수주의 원칙은 현대 중산층이 안고 있는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지 새로운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수주의에도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슐레진저 2세의 진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이념의 추는 현대의 복잡한 사회 변화를 반영하며 보수와 진보를 오가다 중도를 향해 수렴하는 양상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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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오바마 암살 막아라”
美비밀검찰국 사상최대 4000명 동원 철통경호▼
6일(현지 시간) 미국 시카고의 도심 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탄 차량을 추월하려다 순식간에 총을 겨눈 비밀검찰국 요원들에게 포위되는 신세가 됐다.
이 승용차는 정보당국의 브리핑을 받기 위해 시카고 연방수사국(FBI) 건물로 향하던 오바마 당선인의 차량 주변으로 접근하며 우회하려 했다. 그러자 검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순식간에 이 승용차를 막아섰고 요원들이 승용차를 향해 총을 겨눴다.
중무장한 경호요원들이 겨눈 총에 사색이 된 운전자의 ‘무고함’은 곧 드러났지만 이날 해프닝에서 보듯 오바마 당선인의 경호를 책임진 국토안전부 산하 비밀검찰국은 요즘 비상이 걸려 있다.
미국 일간지 시카고 선타임스 등은 첫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 암살을 막기 위해 비밀검찰국이 사상 최대 규모인 4000명의 최고 정예요원을 편성해 120여 개 주요 도시에서 운영 중이라고 보도했다.
비밀검찰국은 필요할 경우 대통령과 그의 가족 경호를 위해 FBI는 물론 중앙정보국(CIA), 군까지 지휘 통제할 수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비밀검찰국이 대선 기간 중 오바마 후보에 대한 암살 및 테러 관련 위협을 조사한 건수만 500여 건에 이른다”고 전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한 뒤인 지난해 5월부터 비밀검찰국의 경호를 받아왔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