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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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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불균형, 국가간 비교우위 탓
혹자는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민주당이 의회 지배권을 더욱 강화했으므로 보호주의가 득세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바마 당선인이 대선 유세 과정에서 유독 자동차에서의 한미 간 무역수지 역조현상을 지목하면서 불공정 무역이라고 한 것은 그러한 우려의 단서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이 득세하는 의회로 정치권력이 이동한 미국이 급속히 보호주의로 회귀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오바마 당선인은 세계경제 불안의 진원지인 미국의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실물경기 침체를 극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숙제를 풀어야 하는데, 보호주의로의 회귀는 잘못된 선택이다. 20세기 초 대공황이 그토록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강대국의 경쟁적인 보호주의 장벽 쌓기 때문이었다. 2001년 9·11테러로 불안과 공포가 세계를 엄습할 때 WTO 회원국이 도하라운드를 출범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보호주의는 공포와 위기를 확대재생산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행정부+민주당 의회’의 출현은 미국이 도하라운드를 타결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자동차를 문제 삼아 이미 체결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런 요구는 두 가지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한국과 미국 간에 자동차 분야 무역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은 근거가 없다. 한국이 미국에 연간 70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할 때 미국이 5000대만을 한국에 수출하는 이유는 오바마 당선인이나 미국 자동차노조가 주장하듯이 한국이 미국에 대해서만 자동차 수입 규제를 과도하게 만들어 놓아서가 아니라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 자동차보다 독일 자동차나 일본 자동차를 더 선호해서다. 전 세계 소비자가 다 아는, 미국 자동차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뒤진다는 사실을 미국 정치인들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둘째, 특정 분야의 무역수지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재협상을 하자는 요구는 떼쓰기이다. 재협상은 이미 균형을 맞추어 타결한 협상의 전체 구도를 뒤흔들게 된다. 당연히 국내 이익집단의 반발이 뒤따른다. 한국 국회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전에 한미 FTA를 비준하여 한국의 개방의지를 확고히 천명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적 선택이다.
인기영합보다 공동번영 택해야
한미 간의 자동차 분야 무역이 불공정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동차업계가 좋은 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1980년대 미국은 일본과의 반도체 분야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점유율을 보장하는 협정까지 맺었지만, 역사는 미국 반도체의 쇠락을 기록하고 있음을 오바마 당선인은 인식해야 한다. 무역수지는 국가 간 비교우위를 반영한다. 한국산 철강, 선박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는 반면 미국 교육서비스의 한국 수출이 날로 확대되는 현상은 비교우위를 반영한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제 표를 달라고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오바마 당선인이 보호주의의 압력에 끌려 다니는 인기영합형 정치인이 아닌 세계 번영의 비전을 가진 지도자이길 희망한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