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학부모 보디가드’

  • 입력 2008년 6월 5일 03시 09분


미국 시카고 서부의 한 공공주택 단지. 책가방을 메고 아침 등굣길에 나선 학생 20여 명 옆으로 경계심 가득한 눈빛의 어른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눈에 잘 띄게 노란색 셔츠를 맞춰 입은 이들은 학생들의 ‘등하굣길 보디가드’로 나선 학부모와 자원봉사자. 학교 주변 총기사건에 대한 우려로 학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등하교를 하는 운동이 시카고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3일 보도했다.

이 운동은 3월 초 루벤 아이비라는 학생이 방과 후 학교 인근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날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 두 명도 머리 등에 총을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시카고에선 지난해 9월 새 학기가 시작된 후 현재까지 학교폭력으로 사망한 학생이 24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1명은 총격으로 희생됐다. 시내 여러 지역에서 모인 학생과 폭력조직이 한 학교에서 공부하며 갈등을 빚다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 신문은 이 지역에서 총기 소지가 만연하며 학교폭력 양상도 10년 전에 비해 훨씬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시카고 경찰청의 모니크 본드 대변인도 “요즘 청소년들의 싸움 방식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시 정부와 경찰은 학교폭력과 총기사고 방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리처드 달리 시장은 총기 소지 제한법 제정을 추진 중이며 경찰청은 청소년들의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앞당겼다.

끔찍한 총격사건을 접해 온 학부모들은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학교 안팎에서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며 당분간 자녀의 보디가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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