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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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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슈퍼화요일 후 11일간 방심
10개 지역에서 오바마에 내리 져
3월 이후엔 선전했어도 만회못해
“돌이켜보면 그때가 ‘마(魔)의 열하루’였다. 잠깐 방심한 짧은 기간에 모든 걸 망쳐버린 것이다.”
미국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경선 캠프 관계자는 20일 본보 기자에게 이같이 털어놓았다.
그가 말한 ‘마의 11일’은 2월 9일에서 19일까지를 뜻한다. 이 기간은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2월 5일 슈퍼화요일 경선이 끝난 뒤여서 다들 크게 주목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11일간 치러진 루이지애나, 메인, 버지니아, 메릴랜드 주, 워싱턴 DC 등 크지 않은 10곳의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는 전승(全勝)을 거뒀다. 그 결과 2월 19일 두 후보 간의 선출직 대의원 격차는 161석으로 늘어났고 그 뒤 힐러리 후보는 이를 만회할 수 없었다.
사실 이 기간의 전후엔 힐러리 후보의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23개 지역에서 동시에 경선을 치른 2월 5일의 슈퍼화요일 승부 득표에선 0.4%포인트 차로 이겼다. 1월엔 엎치락뒤치락하는 속에 선출직 대의원은 근소한 차로 열세였지만 슈퍼대의원은 압도적이었다.
2월 19일 이후의 성적도 힐러리 후보가 더 좋았다. 5월 20일까지 13차례의 경선에서 힐러리 후보는 7승 5패 1무승부를 기록했다. 개표가 끝나지 않은 오리건 주를 제외하면 12개 지역에서 443석 대 398석으로 앞섰다. 오바마 후보가 담임목사 발언 파문 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사이 지지도 격차가 오차범위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사실 2월 중순은 힐러리 캠프가 내홍을 겪던 기간이었다. 선거 전략을 놓고 내부에서 격론이 일었고 2월 10일 캠프 책임자가 경질됐다. 자금 운용이 여의치 않아 일선 운동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에 오바마 후보는 이 기간에 지금 돌이켜보면 ‘반짝 현상’이었던 측면이 있지만 백인 남성 등 취약 계층에서 지지도를 크게 올리며 외연을 넓혔다. 전국 지지도도 10%포인트 이상 벌렸다. 특히 전통적으로 남부로 간주되는 버지니아에서의 승리는 본선 경쟁력에 믿음을 더해준 승부였다.
이처럼 잠깐 방심하다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진 것은 공화당 주자였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까지 1위였던 그는 대선전 개막 이벤트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을 “나는 큰 지역에 집중한다”며 경시하다 순식간에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다.
한 선거 전문가는 “잠시라도 졸면 추락해버리는, 순식간에 판세가 요동치는 21세기 대선전의 특징을 경시한 결과”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