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제9장 한일 국교 정상화 (上)

  • 입력 2008년 4월 29일 10시 06분


‘63 동지회’사무실에 걸려 있는 학생 데모 때 사진=서울에서 사쿠라이(桜井) 촬영.
‘63 동지회’사무실에 걸려 있는 학생 데모 때 사진=서울에서 사쿠라이(桜井) 촬영.
현승일 국민대학교 전 총장.
현승일 국민대학교 전 총장.
‘번영’의 대가 지금도 역사적 마찰은 계속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과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한 때 식민지였던 한국을 비롯하여, 이웃 나라들과의 국교 정상화는 외교 과제로 남아 있다. 제9장에서는 (上)에서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다루고, (下)에서는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다루기로 한다. 》

지난2월 25일 한국은 이명박 씨( 李明博. 66)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현대 건설 사장을 거쳐 서울 시장으로 된 그는‘첫 CEO(최고 경영 책임자) 출신 대통령’으로서, 국민들로부터 경제 재생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성숙한 한일 관계를 위해서는 사죄하라, 반성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토론하면 된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에서 자주 외교 문제의 쟁점이 되는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역사 인식에 대해서, 이 대통령이 당선 된 뒤에 한 말이다. 일본에게 쓴 소리를 던진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과는 달라서, 일본에서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40여 년 전, 명문 사립대인 고려대 학생 시절 반일 운동의 투사였다.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데모에 참가해 체포되어 옥살이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불과 수억 달러로 식민지를 청산 / 한국 학생들 ‘굴욕스럽다’

964년 6월 3일.

서울 시내에서 학생과 시민 수 만 명이 모여, “박 정권은 민족을 위해 물러나라”, “부패하고 무능한 박 정권 타도”라고 외치며 데모를 했다. 바로 전 해에 대통령 선거에서 갓 군복을 벗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데모가‘국교 정상화 반대’에서 ‘반정부’로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여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력으로 데모를 진압했다.

왜 학생들과 시민들은 국교 정상화에 반대했는가.

그 당시, 서울 대학교의 리더였던 현승일(玄勝一) 국민 대학교 전 총장(66)을 만나 보았다.

“불과 수억 달러로,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청산한다 하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굴욕 외교의 극치였다.”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20년이 채 못 되었다. “누구에게나 괴로웠던 식민지 시대의 기억이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이런 내용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민족적인 감정이었지요.”

玆Ε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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