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오일 빈부격차’ 위험수위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2일 오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항공기에는 러시아 단체 여행객이 좌석 200여 석을 차지했다.

한 외국 항공사 직원은 “석유회사에 다니는 임직원들이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시아로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 좌석 90%를 단체로 예약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공항에 택시를 몰고 나온 세르게이 판페로프 씨는 “모스크바 주민의 75%가 새해 연휴를 집에서 보내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해외여행을 떠나는 석유회사 직원들은 특권 계층에 속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국제 유가 급등으로 러시아가 석유 수출을 한참 늘리고 있는 요즘, 오일 머니가 낳은 빈부 격차에 불만을 터뜨리는 러시아 국민이 늘고 있다.

영자지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석유산업 종사자들은 러시아 최상위 봉급생활자의 10%에 속한다. 이들과 최하위 봉급생활자 10%의 소득 격차는 40배에 이른다.

러시아 석유가스회사들은 유가 인상 때마다 근로자들의 월급을 올려 왔다. 지난해 말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수출기업인 가스프롬의 대졸 사무직 초임은 월 5000달러를 넘어섰다.

반면 급여 수준이 비교적 높다고 알려진 자동차회사 GM아브토바즈 근로자들이 지난해 8월 파업 당시 공개한 평균 월급은 300달러였다.

‘오일 디바이드’로 불리는 이런 격차는 지방 공무원 사이에도 확산되고 있다. 석유가 많이 나는 지역인 시베리아의 튜멘 한티만시스크 공화국 공무원들은 로스토프 주에서 근무하는 지방 공무원보다 월급이 두 배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오일 머니 직접 분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분히 대통령선거(3월 2일)를 의식한 조치다.

러시아 정부는 우선 2004년 1월부터 석유 수출대금으로 조성한 안정화기금을 풀기로 했다. 안정화기금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 유가 급등에 따라 매달 50억 달러(4조6500억 원)씩 쌓이고 있다.

1일부터 모스크바 주의 교사 의사 문화종사자 월급을 평균 25% 올리고 직업군인 가족 부양비를 높인 것도 넘쳐나는 오일 달러가 낳은 소득 격차를 줄이자는 조치다.

러시아 민간은행인 알파방크의 나탈리야 오를로바 수석연구원은 “오일 머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크게 기여했지만 빈부 격차의 확대와 산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