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아메리칸 200만 시대…교포사회 빛과 그림자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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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1.5세대로 구성된 문화패 ‘일과 놀이’가 지난해 9월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물 공연을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인 1.5세대로 구성된 문화패 ‘일과 놀이’가 지난해 9월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물 공연을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내 새로운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 팰리사데스파크 인근의 한 빌딩. ‘신라제과’ ‘손짜장’ ‘법률사무소’ 같은 한국어 간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뉴욕·팰리사데스파크=공종식 특파원
미국 내 새로운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 팰리사데스파크 인근의 한 빌딩. ‘신라제과’ ‘손짜장’ ‘법률사무소’ 같은 한국어 간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뉴욕·팰리사데스파크=공종식 특파원
‘124만6240명.’

미국 인구센서스국이 실시한 ‘2005년 미국 커뮤니티 조사’에서 집계된 재미 한인교포 수다.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이민 온 한인들이 하와이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03년. 미국 이민 역사가 100년을 넘기면서 미국 땅에서 사는 한인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시민’이 되려는 한국인의 행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불법체류자 25만 명에 기타 장기체류자까지 포함하면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는 것.

뉴욕·뉴저지 유권자센터(소장 김동석)는 최근 뉴욕에서 재미교포 사회를 연구하는 재미 한인학자 19명을 초청해 동포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을 중심으로 코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 아메리칸 드림의 빛과 그림자

뉴욕 최대의 한인 밀집 지역으로 ‘코리아타운’ 역할을 하고 있는 퀸스에 사는 김명수(50) 씨. 한국에서 중소기업에 근무했던 그는 요즘 밤에 출근한다. 24시간 운영되는 델리(음식 등을 파는 소형 가게)에서 야간근무를 하기 위해서다.

근무시간은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밤낮을 거꾸로 생활하면서 일주일에 6일 동안 일해 손에 쥐는 주급은 500달러. 한 달에 2000달러(약 190만 원)를 조금 넘게 번다. 부인도 청소 일을 하며 함께 벌고 있지만 월세 생활비 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건강보험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병원 치료는 생각도 못한다.

김 씨는 “미국 온 지 4년이 됐지만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욱 생활이 힘들다”고 말했다.

누구나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올 때는 ‘꿈’을 꾼다.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도 미국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겠다.”

그러나 모두가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유의영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미국 인구센서스국의 2000년 조사 결과를 인용해 재미 한인교포의 빈부 격차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밀집지역인 코리아타운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중간가구소득(전체 가구소득 중 중간 지점의 소득)은 2만7007달러로 같은 지역에 사는 흑인(2만8856달러)보다도 적다.

한인 교포의 소득은 사는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전문직이 많이 사는 샌프란시스코 주변 지역 한인 교포들의 중간가구소득은 5만3115달러로 코리아타운 거주 한인들의 두 배에 이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인들은 미국에서 성공한 이민자로 분류된다. 2005년 기준으로 한인들의 중간가구소득은 4만7765달러로 전체 미국인 평균소득(4만6242달러)보다 높다. 상당수 한인이 나름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인교회에 가면 벤츠 BMW 등 미국에서도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타기 힘든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다. 그만큼 열심히 일해서 미국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근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세탁업, 네일업, 델리 등 업종의 수익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한인들이 뉴욕 시 일대에서 운영하는 세탁소는 2000∼2500개로 전체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석근 뉴욕 한인드라이클리너스협회장은 “기름값 등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 때문에 요금은 올릴 수 없어 세탁업 수익성이 많이 악화되고 있다”며 “특히 맨해튼은 임대료마저 올라 문을 닫는 회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요즘은 중국인들이 세탁업에서도 저가(低價) 공세를 펼치기 때문에 한인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 기업가 정신으로 성공 신화를 이룬 한인

김대원(53) 위키드패션 사장. 30년 전 미국 이민 길에 올랐을 때 그는 맨주먹이었다. 야채가게 점원, 의류판매점 점원을 거쳐 1991년 회사를 창업했다.

이 회사의 ‘사우스폴(SOUTHPOLE)’ 브랜드는 미국 전역에서 유명한 청소년 의류 브랜드로 성장했다.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한 이 회사의 올해 매출 예상액은 4억7000만 달러(약 3400억 원). 과감한 기업가 정신이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프로즌 요구르트 업체인 핑크베리의 공동대표 황혜경(33), 이영(43) 씨는 최근 수백억 원 부자 반열에 올랐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이 최근 핑크베리에 2750만 달러(약 256억 원)를 투자하고 공동경영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고교를 마치고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황 씨는 레스토랑 사업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그러다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출신인 건축 디자이너 이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2005년 과일을 얹은 시큼한 맛의 프로즌 요구르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두 사람이 낸 조그만 가게가 2년 만에 미국에 40여 개 점포를 내고 스타벅스와 손을 잡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처럼 미국에는 성공 신화를 이룬 한인들이 수두룩하다.

미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면 그 보상이 천문학적이다. 세계경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 규모가 큰 데다 사회 전반에 재능과 노력에 대한 보상 문화가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지도 바뀌는 ‘코리아타운’…“좋은 학군으로”▼

미국에 이민 온 지 20년이 되는 장성수(50) 씨. 뉴욕 시에 살던 그는 4년 전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 시로 이사 갔다.

그리니치는 헤지펀드가 몰려 있는 전형적인 교외 지역으로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미국에서 살기 좋은 곳을 꼽으면 매년 랭킹에서 빠지지 않을 만큼 주거 여건이 좋다.

장 씨가 그리니치로 이사 간 것은 학군 문제가 크다. 뉴욕 시는 공립학교 수준이 떨어지지만 그리니치에는 명문대 진학률이 웬만한 사립기숙학교 못지않을 만큼 좋은 공립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도시마다 징수한 재산세로 학교 재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집값이 비싼 곳일수록 공립학교가 좋다.

과거 한인들이 미국에 이민 와서 뉴욕에 정착하면 보통 퀸스 플러싱에서 살았다. 플러싱은 뉴욕의 ‘코리아타운’이었다. 플러싱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많아 지금도 ‘미국 속의 한국 혹은 중국’을 연상하게 할 정도다.

하지만 상당수 미국 백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심을 탈출해 교외 지역으로 갔듯이 이젠 한인교포들도 사업은 다운타운에서 하되 주거는 교외에서 하는 추세다. 뉴욕에선 롱아일랜드, 맨해튼과 허드슨 강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 등이 선호하는 교외 주거지역이다.

로스앤젤레스도 마찬가지. 이민 생활에 어느 정도 정착하면 코리아타운을 떠나 글렌데일, 풀러턴, 노스리지, 어바인, 토런스 등 교외 지역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 추세가 되고 있다.

최근 한인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 일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 조지아 주 최고 명문 공립학교로 꼽히는 월튼고교가 있는 매리에타 시에 한국인이 몰려들고 있다.

이 밖에 조지아 주 포사이스카운티, 풀턴카운티 등 교외 지역도 한인이 많이 이사하고 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미국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교외로 교외로”▼

‘파리바게트, 신라제과, 금강제화, 우리은행, 소문난 집….’

25일 오후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의 팰리사데스파크(팰파크).

중심도로인 브로드웨이를 따라서 늘어선 가게 간판은 대부분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적혀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도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영어로 된 표지판만 없으면 한국 거리로 착각할 만큼 한국적이었다.

뉴욕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플러싱과는 약 65km, 맨해튼 중심 지역과는 약 30km 떨어져 있는 팰파크는 2000년 통계 기준으로 전체 인구가 1만7073명. 이 중 한국인 비율이 38.4%로 시(市) 단위에선 한국인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다. ‘신(新)코리아타운’인 셈이다.

팰파크에서 만난 한 교포는 “요즘은 한국인 비율이 더욱 높아졌다”며 “초등학교나 고등학교에서 한국인 학생 비율은 약 47%에 이른다”고 전했다.

팰파크는 한국인이 본격 유입되기 전까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백인 블루칼라층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맨해튼에 사업체가 있는 한인들의 주거지역으로 각광받으면서 도시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인들이 이곳에 몰려든 이유는 맨해튼 중심부와 바로 연결되는 버스 노선이 있는 데다 95번, 80번 도로 등 주요 간선도로와 바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 한인들이 뉴저지 주 북부 버겐카운티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식당과 가게들도 팰파크를 중심으로 많이 생겨났다.

팰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뉴저지 주 포트리도 한인 인구 비율이 2000년 통계 기준으로 17.2%에 이르는 대표적인 신코리아타운이다. 포트리는 조지워싱턴 다리만 건너면 바로 맨해튼에 닿는 교통의 요지. 미국 독립운동사에서 빠지지 않는 유서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포트리에서 한인 비율이 높아지자 지난해 포트리 교육청은 초등학교에서 희망자에 한해 수업을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하는 이중언어교육을 시범 실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인 학부모는 물론 다른 민족 학부모도 반대해 이중언어교육이 실시되지는 못했다.

뉴욕·팰리사데스파크=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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