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즈펠드가 스탠퍼드대 온다고?”

  • 입력 2007년 9월 23일 03시 01분


‘서부의 하버드’로 통하는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가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정치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학이 술렁이기 시작한 것은 이 대학 소속 후버연구소가 이달 초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을 비상근 특임 방문연구원으로 초빙해 테러 연구를 맡길 것”이라고 발표하면서부터.

미 언론에 따르면 럼즈펠드 전 장관은 앞으로 1년간 3∼5차례 스탠퍼드대를 방문하게 된다. 그는 국방장관 퇴임 후 버지니아 주 자택에서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반대 기류는 19일 현재 소속 교수 및 재학생 2100여 명이 서명하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대자들은 “럼즈펠드의 정책은 스탠퍼드대가 추구해 온 진실 추구, 관용, 국제법 존중, 타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가치와 양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스탠퍼드대는 리버럴 정치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있으며 미국 상위권 대학이 대체로 그렇듯 진보적 성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대학 당국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후버연구소는 서부 지역에서 보수 이념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스탠퍼드대는 예전에도 공화당 정치인에게 큰 거부감을 보였다. 198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퇴임 후 설치할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스탠퍼드대에 유치하려 하자 교수와 학생들이 반발해 무산시킨 바 있다.

지난해에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후버연구소를 방문해 공화당 출신으로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 씨와 만찬을 하려 했지만 학생들의 반대 시위에 부닥쳐 만찬 장소를 학교 밖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소수의 견해를 존중하는 가치가 대학의 정신이라면서 전직 장관의 초빙조차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21일자에서 “나는 럼즈펠드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생각을 직접 들어본 뒤 판단하고 싶다”는 한 신입생의 말을 전했다.

럼즈펠드 전 장관의 연구소 ‘안착’이 무리 없이 진행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런 홍역은 내년 말쯤 한 차례 더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이 대학 부총장 출신으로 정치학과 종신교수직을 갖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퇴임 후 스탠퍼드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8월 말 내비쳤기 때문.

당시에도 교수와 학생들은 인터넷에 “잘못된 판단과 조언으로 한 나라(이라크)를 파괴시킨 라이스를 대학이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글을 올리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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