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연방보안국도 두 손 든 ‘극동 마피아’

  • 입력 2007년 9월 19일 19시 34분


요즘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마피아를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도 못 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물류회사를 운영하는 한국 기업인 K 씨도 지난주 블라디보스토크 세관에서 이런 말을 듣고 3주간 세관 창고에 쌓여있던 물품을 꺼내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그는 "도시 항만에는 수많은 선박이 물품 통관을 위해 줄을 서 있지만 지역 마피아와 통하는 화물 주인만이 열외(列外) 대접을 받는 게 관례로 굳어 있다"고 전했다.

올 6월에는 러시아에서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연방보안국(FSB)도 이런 관행에 손을 들고 말았다. 당시 FSB 요원들은 통관 허가서류에 도장을 찍는 부서에 들어가 마피아에 줄을 대고 뇌물을 받던 부서장을 구속했다.

그러자 그의 부하 직원 절반 이상이 휴가를 내고 한 달간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물품 통관 업무는 마비 상태에 빠졌다. 직원들은 면책 약속을 받고서야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FSB로서는 "머리(마피아)는 건드리지 못하고 손가락(하급 공무원)만 잘랐다"는 비난만 들었다.

결국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그는 이달 5일 러시아 극동 군사 도시인 페크로파블롭스크-캄차트스키 시에 들러 "송유관은 연방 재산인데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말이 나온 뒤 동 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을 지휘하던 세묜 바인슈토크 트란스네프티 회장이 해임됐다.

푸틴 대통령은 18일 새로 임명된 빅토르 주브코프 총리를 만나 "사할린 지진이 8월에 일어났는데도 연방 예산이 아직 현지에 가지 않았다"며 연방과 지방 공무원들을 질타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연방 예산을 극동에 보내며 각종 개발 프로젝트에 불을 댕긴다는 계획이다. 부패 관료 제거 작업도 연방 예산 유용을 막기 위한 경고로 보인다.

그러나 극동개발 정책이 성공할 것으로 믿는 이들은 드물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외국인은 "올해 2월 '연해주파 마피아'로 불리던 시장이 구속되자 측근들이 시내 눈을 치우지 않는 등 사보타지를 벌였다"며 "범죄조직이 살아있는 한 극동개발도 요원하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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