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bal View]“엔 약세는 美도 원해…한국경제 큰 짐 될 것”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와세다대 인도경제연구소장

“일본 경제는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경기가 상승 중인 아주 바람직한 국면입니다. 상당 기간 호조가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1990년대 대장성 관료 시절 ‘미스터 엔’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신原英資) 와세다(早稻田)대 인도경제연구소장은 일본의 경제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 추이가 일본 기업의 국제경쟁력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100엔대까지 떨어져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 한국의 수출 기업들이 계속 버거운 경쟁을 해야 할 현실임을 시사했다.

―일부에서는 일본 경제가 아직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있다.

“4년 이상 경기 팽창이 진행되고 있다. 물가가 안정돼 있을 뿐이지 디플레이션 상태가 아니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구조조정이다. 일본 기업의 재무구조는 1995년부터 크게 개선됐다. 산업구조도 재편됐다. 은행업을 예로 들면 대형 시중은행이 10년 전에는 20곳가량이었으나 지금은 4개 은행으로 줄었다. 철강과 석유 등의 부문에서도 흡수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설비투자 열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일단 올해는 좋을 것이다. 내년 이후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가 관건이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언제 얼마나 올릴지가 국제금융계 초미의 관심사다. 많은 전문가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압력에 따라 인상 시기가 늦어질 것으로 점친다.

“내가 일본은행 총재라면 5월을 노릴 것이다. 5월에는 국회가 열린다. 자민당은 압력을 가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야당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금리(단기정책금리가 0.5%)는 너무 낮아서 정상적인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 1년 안에 1%, 2∼3년에 2%까지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국 경제의 과열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 우려가 있다고 보는가.

“중국과 인도의 주식시장은 상당히 과열돼 있지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미국 경제가 연말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흔들릴 정도의 혼란은 없을 것이다. 세계 경제에 약간의 불안 요인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상황이다.”

―해외에 투자된 엔화 자금이 환류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최근 세계 주식시장을 흔들었는데….

“일본 국내와 해외의 금리 격차가 계속 유지되고 엔화 자금이 해외로 나가는 현상도 지속될 것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상당 부분은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중장기 투자자금이다.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투기성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유럽이나 미국의 산업계에서는 엔화 약세에 대한 불만이 많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엔화 약세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금융당국이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환율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엔화 환율 수준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앞으로도 엔화 약세의 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인가.

“엔화 약세의 시정을 요구한다면 현재의 달러 강세 정책을 포기한다는 것이 된다.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미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110엔대를 목표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가 많다. 공감하는가.

“현 단계의 변동 범위는 115∼120엔이다. 당분간은 이 범위에서 움직일 것이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악화되면 변동 범위가 110∼115엔으로 바뀔 수 있다.”

―일본 수출 기업들은 달러당 엔화 환율이 110엔에 근접하면 국제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다. 일본은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환율은 아주 심한 엔 약세다. 110엔이 아니라 100엔이 되더라도 대기업에는 이렇다 할 영향이 없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엔화 약세 때문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이 100엔까지 떨어져도 일본 기업의 경쟁력에 문제가 없다면 한국 기업들은 계속 고달픈 신세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과거에 엔화와 원화 가치는 10 대 1 정도의 비율이 성립했다. 이 수준이 무너져 지금처럼 심한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한국 경제에는 큰 문제가 된다. 한일 간에는 엔화 가치가 너무 높으면 일본 기업이, 엔화 가치가 너무 낮으면 한국 기업이 타격을 받는 현상이 구조화돼 있다. 어렵지만 금융정책 공조를 통해 현재의 원-엔 환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소장은

△1941년 일본 가나가와 현 출생

△1964년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1969년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1995년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 1997년 국제담당 재무차관

△2006년 일본 와세다대 인도경제연구소장

△주요저서: ‘국제금융의 현장’ ‘시장원리주의의 종언’ ‘일본과 세계가 떨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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