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知日派네트워크]도요타, 워싱턴서 취임축하 파티

  • 입력 200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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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에서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사상 최초로 지난달 청문회가 열렸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새 의회 지도부도 결의안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에선 '낙관할 수 없다'는 신중론이 여전히 강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다음달 방미할 예정인 데다 일본의 로비가 소리 없이 조직적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간 축적돼온 워싱턴 내 지일파 네크워크는 총력 로비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워싱턴에 뿌리내린 일본의 영향력을 분석한다.》

#장면 1

19년간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다 2005년 타계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그는 암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탐조광(探鳥狂)'이었다. 주말에 새를 찾아 이곳저곳을 누비는 노(老)법관의 옆엔 키 작은 동양남자가 자주 눈에 띄었다.

그는 가토 료조(加藤良三) 주미 일본대사. 미국 상류층 인사들이 즐기는 취미 생활 가운데 하나인 탐조 모임을 통해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도 접근하기 힘든 대법원장의 친구가 된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적막한 자연에서 몇 시간씩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은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깊을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장면 2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자동차 연비개선 법령 개정에 나섰다. 일본의 닛산 자동차로서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된 차의 대미수출에 타격을 입을지 모르는 위기였다.

이 때 닛산을 위해 나선 인물이 지역구에 닛산 공장이 있는 공화당 상원 1인자 트렌트 로트 의원. 결국 법안은 통과됐지만 닛산은 2004년 '적용 면제'를 받아냈다. 실적 저하로 고통 받던 GM을 비롯한 '빅 쓰리'는 물론 막강한 전미자동차노조의 반대도 먹히지 않았다. 누가 로트 의원의 배후에 있었는지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막강하기로 이름난 일본의 미국 내 영향력, 그 원천은 무엇일까. 그 힘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인맥구축과 조직적 로비, 그리고 문화적 침투를 통해 축적돼 왔다.

▽워싱턴의 지일파 네트워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퇴임전인 지난해 6월 아들을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의 문하에 보냈다. 그린 전 보좌관이 2005년 말 백악관에서 나와 책임을 맡은 도요타 일본연구소에서 일을 배우게 한 것.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4년간 일본의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린 전 보좌관은 백악관 재직시절 미-일 동맹 강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지일파 인사로 꼽힌다.

지난달 18일 발표된 '제2차 아미티지 보고서'의 공동저자 18명의 면면을 보면 그린 전 보좌관 외에도 리처드 이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켈리 전 동아태 차관보,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 등 쟁쟁한 외교 문제 전문가가 가득하다.

일본은 미국의 재단들이 외교문제에 대한 펀딩(기금 지원)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1970년대부터 미국 내 외교전문가들에게 엄청난 기회와 자원을 열어주었다. 일본과 관련된 어떤 주제든지 갖고 오면 기금을 지원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정밀(smart) 공략'으로 전략을 바꿨다. 무차별적 펀딩 대신 소수의 정예 인사와 싱크탱크에 펀딩을 집중한 것이다.

물론 미국 내 일본 전문가 그룹은 자발적으로 형성된 측면도 크다. 조지 워싱턴대 박윤식(워싱턴 한인포럼 공동대표) 교수는 "1980년대에 일본 경제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본을 공부하는 미국인 엘리트가 자발적으로 많이 생겼다. 오늘날의 지일파 인사 가운데는 로비 때문에 일본을 공부했다기 보다는 미국을 위해 일본을 공부한 사람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주일 대사 자리도 지일파 네트워크의 거물들을 배출하는 창구다. 언어학자 출신으로 케네디 행정부 당시인 1961~66년 주일 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는 퇴임 후 하버드대에서 일본사를 강의하면서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데 이바지한 '미국내 지일파의 태두'로 불린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부 정무 차관을 마친 뒤 주일대사를 지낸 마이클 아머코스트는 그 뒤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을 7년간 맡으며 클린턴 행정부의 일본정책에 깊게 관여했다.

케네디 행정부 이후 주일 대사 11명의 평균재임기간은 4.7년. 마이크 맨스필드 대사는 카터 및 레이건 행정부 12년 가까이 대사직을 지냈고, 워싱턴에서 그가 세운 맨스필드 재단은 아시아 문제의 주요 싱크탱크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말 종군위안부 결의안의 본회의 상정을 거부해 폐기시킨 데니스 헤스터드 당시 하원의장도 정계은퇴 후 주일 대사 자리를 희망했다는 소문이 의회 주변에 공공연히 돌았다.

▽전방위 기업진출= 올 1월 워싱턴에선 도요타 자동차가 스폰서를 한 의원 취임 축하 행사가 최소 2건 열렸다.

일본 자동차공업협회(JAMA)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일본 자동차 8사는 미국에 21개 공장을 세워 5만7370명을 고용했다. 판매조직망 종사자를 합하면 43만1700명으로 늘어난다.

2005년 현대 자동차의 앨러배마 공장이 세워질 당시 한국 언론은 주지사, 상원의원 2명, 지역구 의원 2, 3명이 한국의 친구가 됐다고 썼다. 같은 논리라면 일본 자동차 3사는 주지사 14명, 상원의원 28명과 하원의원 30여명을 우군으로 둔 셈이다.

▽대형 로비회사를 동원한 조직적 로비=주미 일본 대사관이 계약을 맺은 로비회사는 13개로 알려졌다. 종군위안부 결의안에 대응할 목적으로만 호간앤핫슨, 헥튼컴퍼니 등 대형 로펌 2개사를 고용한 상태다.

1980년대 후반 고용 로비스트가 252명에 달해 2위인 캐나다 보다 2배 이상 많았던 시절에 비해선 '새발의 피'지만 한국 정부가 지난해에야 처음 소규모 로비회사와 월 3만 달러에 비자면제협정과 한미관계 개선을 과제로 계약을 체결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일본의 로비는 대만 이스라엘 등과는 행태가 다르다. 특정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특정 의원이나 담당 부서를 훑기 보다는 평소 권력 핵심부를 겨냥해 친밀감, 우호감을 축적해 가는 방식이 많다. 뒤에 일본이 있다는 걸 눈치채기 어렵게 제도 법률 변화를 목표로 로비를 하는 경우도 많다.

박윤식 교수는 "이미 발생한 특정 현안을 목표로 뛰어야 하는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로비스트들에겐 생뚱맞은 이슈로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日은 무서운 돈줄…소수 인사만 콕 찍어 공략”▼

美 일본전문가 민디 커틀러

1980년대에 비해 일본 로비의 물량 공세가 줄어들었지만 영향력이 감퇴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지출은 더욱 정교해지고 특정 타깃에 집중되며 더 신중해졌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미-일 관계 전문 연구소인 아시아폴리시포인트의 민디 커틀러 대표는 "일본은 물건 전체를 사지 않고 핵심 부품만 사는 식의 영리한 전략적 투자를 한다"며 "그들은 매우 무서운 '돈줄(deep pocket)'"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지일파 네트워크 양성방식은 어떤가.

"1970, 80년대의 무차별적 펀딩(기금 지원)에서 90년대엔 선별 지원으로 바뀌었다. 소수인사를 골라 일본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초청하고 미래의 총리가 될 정치인과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한 뒤 '특별히 당신에게만 알려주는 것'이라며 정보를 준다. 그러면 당사자는 일본으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았다고 느끼며 핵심 지일인사가 되어 버린다."

―정치적 로비 행태는.

"80년대 무역문제를 계기로 일본은 미국의 정계에서 유권자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특정 지역에 집중 투자해 일본에 우호적인 표를 모았다. 처음 지적인 하부구조를 사들인 뒤 이어 정치적 하부구조까지 산 것이다."

―일본 로비와 인맥이 실제 정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일본의 영향력은 침투력이 매우 크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외국인이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유동성이 많은 게 특징이다. 즉 이번엔 로비가 효과를 냈다고 해도 다음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공화당에만 너무 많은 투자를 했다. 민주당엔 상대적으로 우군이 적다."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일본은 때로 큰 그림을 놓치고 다른 일들이 생기는 걸 못 본다. 종군위안부 결의안은 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고 놀라움일 것이다. 하지만 통과 가능성은 정말 모르겠다. 일본은 매우 강력하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스며들게 할지…."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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