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지금]美 가난한 ‘충치 어린이’의 슬픈 운명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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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도 없고, 저소득층 의료구제대상자(메디케이드·Medicaid) 자격마저 일시적으로 박탈당한 12세 어린이가 충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바람에 박테리아가 뇌에 번지면서 25일 끝내 사망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외곽 메릴랜드 주에 사는 디아몬테 드라이버 군은 변변한 집이 없어 노숙인 보호시설을 전전했다. 열 살 난 남동생과 빵집 공사장 노역, 화장실 청소를 하는 어머니가 가족의 전부. 허드렛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질 리 없다.

미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지 않는다. 대규모 보험회사가 판매하는 사(私)보험에 가입한 뒤 ‘보험료 액수’에 걸맞게 치료를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디아몬테 군은 늘 이가 시리고 아팠다. 이번에 충치 6개를 뽑아야 했던 그의 남동생과 그는 태어나서 지난해 중반까지 단 한 번도 치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 신문은 28일자에서 “메릴랜드 주의 저소득층 자녀 가운데 2005년 1년간 치과 검진을 받은 아이들이 16%를 밑돈다”고 썼다. 디아몬테 군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나마 치료를 받으려 해도 ‘보험수가가 형편없이 낮은 저소득층 의료구제대상자’를 환대하는 치과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메릴랜드 주에는 5500명의 치과의사가 등록돼 있지만, 구제대상자를 받아들이는 의사는 900명에 불과하다.

디아몬테 군은 1월 중순 학교에서 돌아온 뒤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인근 어린이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는 결국 충치 박테리아가 뇌까지 번졌다는 판정을 받고 메릴랜드 어린이병원에서 2차례 뇌수술을 받았다. 6주간 통원치료를 받았고, 다른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 한때 차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25일 끝내 숨졌다.

미국에서 의료보험 가입자가 충치를 뽑는 데 드는 돈은 80달러 선. 그러나 보험 미가입 및 행정지연 때문에 디아몬테 군의 치료비는 최소 25만 달러로 불어났다. 신문은 “보험체계도 엉망이지만, 이런 뒤죽박죽 일처리 때문에 치러야 하는 희생이 너무 크다”고 꼬집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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