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 출신 무슬림 장관의 서글픈 고백

  • 입력 2006년 10월 27일 20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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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대도시 교외지역에서 또 다시 벌어지고 있는 차량 방화 사건을 가장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아주 베가(49) 기회균등장관이다. 베가 장관은 이민자 집안 출신의 알제리계로 이슬람교도다. 태어난 곳은 리옹 교외 빈민가. 지난해 소요사태 때 그의 고향에서도 방화와 폭력이 10여 건 벌어졌다. 출생과 성장 배경만 놓고 보면 베가 장관은 버스에 불을 지르는 청년들과 똑같다.

AP에 따르면 그는 25일 아랍계 프레스클럽이 주관한 회견에서 청년들의 처지를 이해한다면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장관인 자신도 여전히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 그는 "아랍계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능력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백인들만 있는 내각에 들어간 뒤 수 개월 동안 '모욕적이고 무례한 발언'에 시달려야 했다고 그는 밝혔다. 정부가 인종차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상징적으로 임명한 장관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런 시각은 존재한다고 베가 장관은 전했다.

"이렇게 고위직에 있는 사람조차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게 어려운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우상으로 삼아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20년 동안 책 40권을 쓰고 초빙 교수로 미국 코넬대에서도 강의한 엘리트다. 그는 줄곧 소수인종의 사회통합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그는 20년 전부터 프랑스 대도시 교외지역의 상황이 위험하다고 지적해왔다. 그는 "가난한 이웃동네에 사는 이 아이들에게 사회적, 정치적으로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모두 뛰쳐나와 차를 불태울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베가 장관의 경고는 지난해 현실로 나타났다.

그가 장관으로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고용 시장에서 인종 차별을 비롯해 여성, 장애인 등에 드리운 모든 차별을 없애는 것. 그는 전국을 돌며 기업체들에게 '다양성 헌장'에 서명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는 1만개 기업이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의 인종 차별에 쓴 소리를 마다 않는 그는 청년들에게도 끊임없이 조언을 한다.

"파괴가 아니라 발언을 통해 의견을 밝혀라."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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