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쿠데타는 탁신의 이슬람 강경책이 원인

  • 입력 2006년 9월 25일 17시 08분


19일 일어난 태국 군부 쿠데타는 이슬람교도인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참모총장 휘하의 군부가 정부의 이슬람 저항세력 처리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진 데서 비롯됐다고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또 군부가 19일 밤 쿠데타를 결행한 것은 탁신 전 총리의 20일 비상사태 선포 계획을 사전에 인지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에 인접한 태국 최남단의 파타니 얄라 나라티왓 등 3개주는 이슬람교도가 80%를 넘는 곳으로 과거 말레이 이슬람 술탄령이었으나 1907년 영국과 태국간 조약에 의해 태국으로 귀속됐다. 수십 년 전부터 불교 국가인 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종교 관용정책에 의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도 우선주의 입장을 보이는 탁신 전 총리가 집권한 뒤 2004년부터 이슬람 테러가 격화하기 시작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탁신 정권이 지역 대화의 거점인 주민참가조직을 해산하고 군경에 의한 치안체제로 대체하는 등 강경책으로 일관하면서 이슬람교도 주민의 불신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2년 반 동안 이 지역에서는 테러로 인한 희생자가 1400명을 넘었다. 이슬람교도인 손티 분야랏끌린 장군은 지난해 이슬람 측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로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됐으나 탁신 정권은 그가 제안한 이슬람 저항세력 지도자와의 대화 노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쿠데타 지도부는 탁신 정권이 남부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상실한 데 대해 우려를 가져오다 마침내 남부의 상업 관광중심지인 핫 야이에서 16일 폭탄 테러가 발생해 4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하자 쿠데타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테러가 푸켓 등 북부 관광지로 확산될 경우 연간 50억 파운드 규모의 관광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최종 결심을 내렸다는 것.

한편 마이니치 신문은 군부의 쿠데타 결행일이 하루 늦었더라면 탁신 전 총리의 비상조치 선포에 따라 쿠데타가 미수에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쿠데타 계획을 사전에 인지한 탁신 전 총리는 20일 밤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집회가 예정돼 있음을 알고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과 경찰관을 동원해 집회 참가자와 충돌하는 상황을 연출한 뒤 이를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손티 사령관 등은 수일 전에 비상사태 선포 정보를 입수하고 하루 전날인 19일 선수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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