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요커]범죄소굴은 옛말 ‘할렘 르네상스’관광명소로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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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한 아마추어 흑인 참가자가 6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흑인 밀집지역인 할렘 중심부의 아폴로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아폴로 극장
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한 아마추어 흑인 참가자가 6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흑인 밀집지역인 할렘 중심부의 아폴로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아폴로 극장
미국 뉴욕 맨해튼의 흑인 밀집지역인 할렘. 그동안 범죄 소굴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을 정도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어 관광책자에는 ‘밤에는 절대, 낮에도 가능하면 가지 말아야 될 곳’으로 적혀 있을 정도다. 뉴욕을 소재로 한 ‘다이하드’ 시리즈를 비롯해 영화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런 할렘 곳곳이 최근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할렘 르네상스’(할렘 부흥)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과연 얼마나 달라졌기에….

6일 오후 7시 반 할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아폴로 극장. 매주 수요일에 아마추어 예능인들이 재능을 겨루는 ‘아마추어 나이트’로 유명한 곳이다.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빌리 홀리데이 등 전설적인 흑인 뮤지션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광 가이드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티켓을 나눠 주는 모습도 보였다. 극장에 들어선 뒤 주위를 둘러보니 흑인 관객이 10명 중 6, 7명은 되어 보였지만 백인도 많이 보였다. 특히 이 극장의 명성 덕분에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아폴로 극장은 매주 아마추어 출연자 중에서 1등부터 3등까지 3명을 뽑는다. 흑인 출연진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이날 역시 다양한 인종의 아마추어 출연진이 노래, 기타 연주, 춤 등 다양한 재능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뛰어난 솜씨를 보여 준 출연진에는 열렬한 환호로 화답했다. 그러나 신통치 않은 출연진에는 주저 없이 야유를 보내 무대에서 ‘퇴출’시켰다. 공연이 끝나자 사회자가 출연진을 모두 무대에 세운 뒤 관객들이 박수와 함성을 통해 ‘심사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극장에 설치된 소음 측정기가 관객들의 소음을 측정한 뒤 현장에서 입상자를 가려낸다.

공연은 오후 10시 반이 넘어서야 끝났다. 극장 주변 밤거리는 활기가 넘쳐났다. 아폴로 극장 투어가이드인 빌리 미첼 씨는 “관광객이 많이 몰리면서 근처 식당과 가게들도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뉴욕 시 공식 통계에 따르면 매년 할렘을 찾는 관광객은 130만 명. 뉴욕 시의 치안이 개선되고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장기 호황을 기록하면서 흑인들의 일자리가 늘어나 범죄율도 많이 떨어졌다.

특히 아폴로 극장처럼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시설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한 것도 할렘 르네상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스펠 위주로 진행되는 흑인교회의 예배를 ‘즐기는’ 예배 관광상품도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공연이 끝난 뒤 자동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까지는 골목길을 통과해 500m 이상을 걸어야 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유달리 길게 느껴졌다. 아직도 ‘마음속의 할렘’은 여전히 과거의 ‘무서운 지역’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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