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을 찾아가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공중조기경보기(EX) 사업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 국방부도 최근 ‘EX 사업에선 한미 양국군의 상호 운용성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한국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업은 2조 원을 투입해 공중 조기경보기 4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현재 미 보잉사의 E-737과 이스라엘 엘타 사의 G-550이 경합 중이다. 보잉은 큰 기체와 우수한 레이더 성능을, 엘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두 기종이 모두 요구 조건을 충족할 경우 ‘싼 제품’을 선택하겠다고 이미 밝힌 상태다. 한미 동맹을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성능 대비 가격으로 기종을 선정하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은 변모하는 양국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군 일각에선 핵심 전략무기인 EX를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도입할 경우 유사시 한미 연합작전의 효율성과 상호 운용에 지장이 초래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또 총 5조4000억 원이 투입되는 한국형헬기사업(KHP)의 경우 사실상 프랑스와 독일의 합작회사인 유로콥터가 미국의 벨사, 영국과 이탈리아의 합작사인 IWIL을 제치고 선정이 유력시되고 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KHP의 해외 업체 선정 기준은 가격과 성능, 기술 이전 조건이며 한미 동맹 등 정책적 고려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2002년 4월 정부가 사상 최대의 전력 증강 사업인 공군의 차기전투기(FX)로 미국의 F-15K를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대신 선정할 때 한미 군사 관계를 결정적으로 고려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국방부는 당시 “1차 성능평가에서 두 기종이 오차 범위 3% 내에 들어 정책적 요소(한미동맹)를 고려한 2차 평가 결과 F-15K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다소사는 “라팔이 F-15K를 성능에서 크게 앞섰지만 잘못된 평가로 수주가 무산됐다”며 “다시는 미 방위산업체의 사냥터에서 수주 경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국방부는 같은 해 7월 차세대구축함(KDX-III) 3척에 장착할 레이더 등 전자전(電子戰) 체계로 미 록히드마틴사의 이지스를 선정했다. 이때도 경쟁 입찰업체였던 네덜란드의 탈레스사는 “사업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해 파장이 일었다.
국방부는 전투기 도입 사업엔 ‘차기’, 구축함 도입 사업엔 ‘차세대’라는 표현을 각각 쓰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미국 무기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사라진 것에 대해 군의 한 관계자는 “결국 한미 동맹과 한미 군사 관계의 미묘한 변화가 반영된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제 일색의 국내 무기 도입처를 다변화하겠다는 정책적 고려도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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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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