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개정판 실험교과서 한국사 완전삭제…‘2차 역사大戰 조짐’

  • 입력 2005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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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중국의 8차 교과과정 개정 최종심의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역사전쟁에 2차 전운이 일고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의 이길상 소장은 “원래 올해로 예정됐다가 미뤄졌던 중국의 교과서 개정 최종심의가 내년 3월에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관련해 한중 외교부 간 합의사항의 핵심 중 하나는 “동북공정의 내용을 중국 교과서에는 반영하지 않는다”였다.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 기간에 지적됐던 것처럼 올해 7월 인쇄된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의 한글판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국사가 통째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한글판 교과서는 런민(人民)교육출판사의 ‘과정표준 전국 실험교과서’를 번역한 것. 이 실험교과서는 한중 합의 이전인 2003년 6월 발행된 개정판. 이전엔 고구려사를 포함해 2쪽에 걸쳐 한국의 역사를 소개했으나 개정하면서 이를 통째로 빼고 일본의 역사만 소개하고 있다.

중국 중학교 3년생들이 배우는 ‘세계역사’ 교과서. 옌볜교육출판사의 2004년 4월판 교학대강 교과서(왼쪽)와 2005년 7월판 과정표준실험교과서. 왼쪽 교과서에는 고구려 ‘해뚫음무늬 금동장식품’ 사진과 함께 한국역사가 소개되는 반면 오른쪽 교과서에선 한국역사는 사라지고 일본역사부터 등장한다.

고구려연구회의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한국사를 세계사에서 뺐다는 것은 결국 중국사의 일부로 본다는 이야기”라며 마다정(馬大正) 중국사회과학원 동북공정 전문가위원회 주임이 쓴 ‘고대중국고구려역사속론’(2003년) 서문의 내용을 소개했다. 마 주임은 이 글에서 “1949년 이후 일정기간 동안 우리 학계의 실수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영역에서 떨어뜨려 세계사, 외국사의 영역이라는 관점을 보였던 적이 있다”며 이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처럼 한국사를 통째로 뺀 세계사 교과서가 내년 최종심의를 통과할 경우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 고대사를 삭제해 한중 외교 분쟁이 일어났던 지난해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는 ‘교과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중국 당국의 약속만 믿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역사교육 체계를 연구한 전북대 김유리(역사교육학) 교수는 “중국의 교육과정이 2001년부터 지방정부와 학교 차원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큰 틀의 변화를 겪고 있는데 국내에선 아직 그 실태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본디 구소련의 교육과정을 모델로 삼아 ‘교학대강’이라는 중앙정부의 교육지침에 의거해 만든 전국단위의 교과서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2001년 미국 교육과정을 모델로 전국단위 교육과정과 함께 지방정부 단위로 자율적 교육과정을 제정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한 ‘과정표준’ 제도가 발표됐다. 이에 따라 전국 공통의 교과과정에 의거한 전국교과서와 지역별 개별 교육과정에 의거한 지역교과서로 세분화가 진행 중이다.

실험교과서는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2002년 1차 심사(초심)를 통과한 교과서들을 일부 학교에서 일정기간 실험적으로 가르쳐 본 뒤 내년 최종심의를 거쳐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현재 교학대강 교과서, 과정표준 전국실험교과서, 과정표준 지역실험교과서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연구재단의 윤휘탁 연구위원은 “런민교육출판사의 세계사 교과서는 한중 합의 이전에 채택된 실험교과서라는 점에서 한중 합의 위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년에 정식교과서로 채택된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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