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明末淸初 지식인들 그들속에 우리 있다

  • 입력 2005년 4월 19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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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의 지식인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청초 양명학 좌파의 자유주의적 사상가 탁오 이지(卓吾 李贄·1527∼1602)의 ‘분서’(焚書·한길사)가 완역된데 이어 최근 그의 일생을 조명한 ‘이탁오 평전’(돌베개)이 출간됐다. 또 그를 흠모했던 자유주의적 문인 원굉도(袁宏道·1568∼1610)의 전집 ‘원중랑전집’(소명출판)이 완역 출간되고, 장대(張岱·1597∼1679) 대명세(戴名世·1653∼1713) 등 낯선 명말청초 학자들의 글들도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이지는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던 것이다”라며 공자와 맹자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비판하고 나섰던 지식인이다. 경전의 해석보다 마음속 깨달음을 중시하는 양명학자 중에서도 급진적 좌파로 꼽히는 그는 중국 역사상 정치적 이유와 무관하게 사상 때문에 옥에 갇힌 최초의 사상범으로 불린다. 감옥에서 자결한 그는 자기 책을 불태워 없앨 책이라며 스스로 ‘분서’라고 제목을 붙였다. 결국 책은 제목대로 불태워지고 그의 사상은 묻혔다.

원굉도는 도덕과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자아와 독창적 개성을 강조한 작가였다. 허균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이덕무 유득공 등 17,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의 작품을 흠모해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불광불급)’의 마니아적 학술 풍토가 조성됐다.

왜 명말청초의 사상가들이 최근 한국에서 재평가되는 것일까.

첫째는 이들의 글과 사상에 담긴 다원성과 통합성 같은 현대성에 대한 재발견이다. 이지와 원굉도는 공자와 맹자, 주자의 지적 권위에 거침없이 도전하면서 주체적이고 내면적 이해를 강조했다. 또 국가이데올로기가 된 유교에 반기를 들면서 유불선(儒佛仙)의 통합을 꿈꿨다.

둘째는 동아시아적 근대성에 대한 재인식이다. 명말청초 문인들의 산문집 ‘연꽃 속에 잠들다’(태학사)를 펴낸 전북대 이종주(국어국문학) 교수는 “이들은 중국 중심, 과거시간 중심의 가치관에 포위되어 있던 조선 실학자들에게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일깨워 우리 안의 근대성을 여는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셋째, 현실에서는 좌절했지만 새로운 시대정신을 열어간 그들의 치열한 삶이 보여주는 비극적 카타르시스도 한몫을 한다. ‘분서’를 번역한 한밭대 김혜경(중어중문학) 교수는 “명말청초 지식인들은 사상과 문학, 시대적 상황을 불문하고 모든 방면에서 더 이상 출로가 보이지 않는 시대를 살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지식인의 고민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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