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부드러워요”…라이스, 내달초 유럽8개국 방문

  • 입력 2005년 1월 28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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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응징하고(punish), 독일은 무시하며(ignore), 러시아는 용서한다(forgive).”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2003년 이라크전쟁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유럽의 우방국에 대해 사석에서 썼던 표현이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의 안보이익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말이다.

이런 라이스 국무장관이 다음달 3∼10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8개국을 방문한다. 곧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西岸)도 들를 예정이다.

미 국무부는 27일 이번 순방이 2월 말로 예정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유럽 방문을 앞둔 사전조율의 성격을 갖는다고 공식 설명했다. 하지만 관심은 역시 미국과 프랑스 독일의 화해 여부다.

라이스 장관과 부시 대통령이 2기 행정부 출범 후 첫 해외순방지로 유럽을 선택한 배경도 유럽과의 화해를 염두에 둔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이날 보도한 라이스 장관과의 인터뷰 내용은 여러 가지 변화의 조짐을 시사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인터뷰에서 이란 핵개발 문제에 대해 “세계가 단합해 외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며, 필요하다면 (경제 제재를 위한 수순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2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안보리 논의 무용론’을 견지했고, 딕 체니 부통령은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말할 만큼 외교적 해결에 부정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또 30일 치러지는 이라크 총선의 뒷마무리, 곧 시작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계속돼온 대(對) 중국 무기금수조치 해제 문제 등 논의해야 할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럽은 그동안 “미국의 해법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견해를 거침없이 드러내왔다.

이라크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인 만큼 설사 치안유지 목적일지라도 유럽의 군대를 파견할 수 없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만 하더라도 미국이 너무 이스라엘에 편향돼 있다고 주장해왔다. 대 중국 무기금수조치도 이젠 재고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유럽순방으로 대서양 양안의 관계개선이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유럽은 “망치(무력수단)를 가진 자는 모든 문제가 못(힘으로 해결할 사안)으로만 보인다”는 영국속담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망치를 갖지 못한 자는 못도 못으로 안 보려고 한다”는 로버트 케이건 카네기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의 반론에 공감하는 미국인도 적지 않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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