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자들 도쿄서 ‘韓流노점’

  • 입력 2005년 1월 5일 18시 04분


‘용사마’로 대표되는 일본의 ‘한류 열풍’으로 한국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운 달력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가고시마 현의 한 달력 판매점에서 일본 여성들이 장동건 배용준 등이 표지모델로 나온 달력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용사마’로 대표되는 일본의 ‘한류 열풍’으로 한국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운 달력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가고시마 현의 한 달력 판매점에서 일본 여성들이 장동건 배용준 등이 표지모델로 나온 달력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이랏샤이마세, 오야스쿠시마스요(어서 오세요, 싸게 드립니다).”

지난해 12월 18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하라주쿠(原宿)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요요기(代代木)공원. 오전 10시 벼룩시장이 열리자마자 공원 곳곳에 500여 개의 노점이 가득 들어섰다.

이들 노점 속에서 한국인 김모 씨(29) 등 2명은 한국에서 가져온 ‘한류(韓流) 상품’을 내놓고 일본인 ‘한류 마니아’들을 유혹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300원에 사온 배용준(용사마)과 이병헌 등의 사진을 400엔에, 1만 원도 안 되는 브로마이드는 2000엔, 드라마 ‘겨울연가’ 휴대전화줄은 300엔에 금세 팔아치웠다.

김 씨는 “일본의 한류 마니아들은 이들 제품을 정품으로 생각하고 있어 경쟁력이 있다”며 “취업도 어려운데 장기적으로 일본인 상대의 소규모 상품 거래나 인터넷 쇼핑몰 등을 운영하기 위해 경험도 쌓고 돈도 벌 겸 장사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일고 있는 것을 기회 삼아 국내의 청년실업자들이 한류 관련 캐릭터상품 등을 들고 일본행 보따리장사로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일본으로 출국한 81만8000여 명 중 31만여 명이 20, 30대 젊은이들로 전년에 비해 1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실제로 도쿄와 오사카(大阪)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몇몇 벼룩시장이나 유명 관광지에서는 최근 한국 가수의 음반과 소주, 김, 용사마 관련 사진 등을 파는 한국인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온라인상에도 한류 관련 상품으로 일본에서 창업을 준비하려는 카페가 잇따라 개설되고 있고 관련 질문들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일본 창업 카페’ 등은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류 상품의 소개나 노점이 가능한 장소 등을 서로 공유한다.

20일경 오사카를 방문해 시장조사에 나설 예정인 경북 안동대 3학년 김모 씨(24·여)는 “한류 열풍으로 정서적, 지리적으로 가까워진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경험도 쌓기 위해 간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취업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소규모 현지 창업에 눈을 돌리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3월이 되면 6개월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해져 일본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도쿄 최대의 한국 상품 유통업체인 ‘한국광장’의 김상렬(金相烈·44) 상무는 “소규모 보따리상들이 물건은 조잡한 데다 저작권 등의 문제가 있어서 대형 업소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며 ”이런 물건들이 한류 상품의 이미지를 흐릴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또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林玄鎭) 교수는 “대졸자 10명 중 6명이 취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류붐을 타고 일본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나 장기적으로 한류의 성숙과 한일관계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인터넷카페 운영자 조언▼

“취업이 어려워서 그런지 1년 사이에 보따리 장사를 배워보겠다고 찾아오는 대학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10년 넘게 일본을 드나들며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일본 보따리 여행사’ 카페를 운영하는 전모 씨(38)는 요즘 조언을 구하는 대학생들의 e메일 때문에 일을 못할 지경이다.

그는 “예전에는 직업상 일본을 자주 드나들거나 일본에 연고가 있는 30대가 소규모 보따리 장사를 했지만 요즘에는 25∼30세 대학생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보따리 장사들의 주요 품목이 김이나 김치 등의 식료품이었지만 최근에는 한류(韓流)스타의 사진, 브로마이드, 시계 같은 캐릭터 상품들이 많다”며 “이런 상품은 일본에서 2∼10배 정도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젊은이들이 준비 없이 무작정 일본행 소규모 창업에 열을 올리는 것에는 반대다. 한류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일본인들의 한국인 노점상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 보따리상들이 몰리고 있는 오사카 등지의 벼룩시장은 벌써 포화상태”라며 “언론에 비친 한류열풍만 보고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처음부터 무작정 돈을 벌겠다고 나서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조언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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