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戰으로 치닫는 ‘유혈총선’…이라크 모술 미군기지 피습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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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치안을 책임지는 미군도 스스로의 안전을 못 지키는데 이라크인들이 과연 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겠느냐.” 21일 이라크 북부 모술 주둔 미군기지가 저항세력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미군 관계자 19명 등 24명이 사망하자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은 이렇게 보도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15만 명으로 늘어나고 저항세력의 거점 지역을 장악했는데도 테러가 이라크 전역으로 확산되고 미군기지마저 공격받는 상황이라면 내년 1월 30일로 예정된 총선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과도정부 총리는 미군기지 피습 직후 이라크 총선은 예정대로 강행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

NYT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안정화 전략에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고 지적했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폭력사태가 계속된다면 이라크 선거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총선 후보자 등록 마감과 함께 공식 선거 일정이 시작된 15일 이후 저항세력의 테러는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낮에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을 ‘공개처형’하는 일이 벌어질 만큼 무정부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갈수록 커지는 치안 불안=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5일부터 21일까지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최소 131명이 죽고 343명이 다쳤다.

특히 21일 미군기지가 폭격당해 24명이 사망하고 타임스지 기자를 포함해 57명이 부상한 모술 사건의 충격파는 컸다.

키르쿠크 서쪽의 하위자에선 도로에 매설된 폭탄이 터져 미군 5명이 다쳤다.

19일엔 남부지역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발라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일어나 최소 68명이 숨지고 222명이 다쳤다.

나자프와 카르발라는 중부 및 북부지역처럼 저항세력의 거점은 아니며 총선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아랍어 인터넷 신문인 알무히트는 이라크 경찰 간부의 말을 인용해 “9000개에 달하는 투표소에서 완전한 치안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총선 비밀계획=MSNBC 방송에 출연한 한 군사 전문가는 20일 “총선을 무산시키려는 저항세력의 공격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며 “새로운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미국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라크 과도정부는 총선을 강행하기 위해 통행금지 시간대에 선거포스터와 전단을 붙이고 각종 선거 우편물은 식량배급 자루에 넣어 유권자 가정에 전달한다는 내용의 비밀계획을 수립했다.

또 저항세력이 폭탄의 폭파 수단이나 연락 수단으로 쓰는 휴대전화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년 1월 14일부터 휴대전화 중계소를 폐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잘해야 반쪽 선거=16일 아랍, 쿠르드, 투르크멘 등 3개 종족이 뒤섞여 사는 키르쿠크에선 수천 명의 아랍계 주민들이 총선 연기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더구나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반대해 온 수니파 69개 정당과 단체는 총선 일정 재조정을 위해 이라크 각계 정파가 참석하는 토론회를 열지 않으면 총선 거부는 물론 대대적인 반정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라크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수니파 지도부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시아파와 쿠르드족만이 참여하는 반쪽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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