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비즈니스 호황]PMC, 전투말고 뭐든 하는 ‘제2의 군대’

  • 입력 2004년 10월 4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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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고위 인사들을 경호하는 딘코프사의 직원(왼쪽 총 든 인물). 딘코프는 이라크에 1000여명의 직원을 파견해 주요 인사 경호 및 경찰 훈련 업무를 맡고 있다.-사진 출처 비즈니스위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고위 인사들을 경호하는 딘코프사의 직원(왼쪽 총 든 인물). 딘코프는 이라크에 1000여명의 직원을 파견해 주요 인사 경호 및 경찰 훈련 업무를 맡고 있다.-사진 출처 비즈니스위크
《1991년 이라크에서 벌어진 걸프전. 당시 미군은 60일분의 물과 식량, 탄환을 준비해 전투에 나섰다. 12년 후 이라크전의 모습은 완전 딴판이었다. 미군은 2, 3일분의 비상용품만 들고 전투를 시작했다. 취사병이나 세탁, 청소 등을 담당하는 군인은 없다. 군인은 오로지 전투에만 집중한다. 무기를 제외한 각종 물자와 용역을 군대에 공급하는 민간 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이 뒤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PMC는 전쟁의 부스러기를 먹고 산다고 해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냉전 종식 이후 부족한 군사를 PMC가 메우면서 ‘제2의 군대’로 발전했다.》

▽군대 아웃소싱은 시대적 추세=전 세계 110개국에서 90개 PMC가 성업 중이다.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은 10∼15%. 딘코프, 큐빅, ITT, MPRI 등 대표적 PMC 주가는 5년 새 3배로 뛰었다. 미국에만 지난해 30여개 PMC가 활동했으며 시장규모는 연간 350억달러(약 40조원)에 달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피터 싱어 연구원은 “2002년 현재 세계 PMC 시장은 연간 1000억달러(약 115조원) 규모이며 10년 후면 2배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PMC가 장사가 되는 것은 ‘군 효율화’ 때문. 군 능력을 향상시키되 비용은 줄이기 위해 전투 이외 부분을 적극 아웃소싱하는 추세다.


91년 당시 미군은 71만1000여명이었으나 지난해 이라크전을 시작할 때는 48만7000여명으로 31%나 줄었다. 영국도 85년 1만6300명이었던 지상군을 최근 1만1400명으로 줄이는 대신 1만3700여명의 민간인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소재 방위산업종합상사의 존 더글러스 회장은 “미군이 걸프전 병력의 3분의 1만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기업의 지원 덕택”이라고 말했다.

PMC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1석3조’로 매력적이다.

군인 대신 민간 경호원을 전쟁터로 내보내면 △의회와 여론의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되고 △정치적 부담이 적으며 △전역 군인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PMC의 총집합소 이라크=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걸프전 때는 미군 50∼100명에 PMC 직원 1명꼴이었으나 이라크전에서는 미군 10여명에 PMC 직원 1명이 배치됐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12개 이상의 PMC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는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 미군의 음식, 세탁, 쓰레기 처리, 우편업무 등을 포괄적으로 맡고 있다.

미 버지니아주에 본사를 둔 딘코프는 탱크 수리 및 유지를 맡고 있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에는 이라크 경찰을 훈련시키는 10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이 밖에 미군에게 전투 시뮬레이션과 실전훈련을 가르치는 큐빅, 쿠르드족 훈련을 담당하는 빈넬 등도 유명한 PMC 업체다.

이라크의 PMC 직원들은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급료가 높다. 이라크 경찰 훈련을 맡은 딘코프는 지난해 웹사이트를 통해 훈련교관을 모집하며 연간 15만3600달러(약 1억7600만원)의 급료를 제시했다. 생활비도 회사가 지급하고 세금도 없다.

▽그늘도 있다=지난해 콜롬비아에서 미국 PMC인 MPRI의 비행기가 추락해 1명이 죽고 3명이 반군에게 붙잡혔다. 당시 미국은 민간인을 어느 선까지 보호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PMC가 활동하는 지역은 주로 전쟁지대로 자국 법률은 물론 파견국 법률이나 군법도 적용되지 않는 무법지대(無法地帶). 따라서 PMC 직원이 적국에 붙잡히면 전쟁포로의 신분으로 제네바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PMC 직원이 도망가면 탈영병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등 경계가 불분명하다.

다국적 군사들도 PMC 요원을 반기지 않는다. 마치 다국적군 소속인 양 공공연히 무기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자의적 행동을 서슴지 않아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

이들이 전투를 벌여도 규제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PMC 경호원들이 이라크 저항단체를 공격한 뒤 그 보복이 종종 다국적 군대에 되돌아오곤 했다. 심지어 지난해 6월 미 의회 보고서는 “국방부가 고용한 PMC의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국방연구원 문광건 연구위원은 “군 정예화 측면에서 PMC는 더욱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전쟁과 전투는 근본적으로 국가가 독점하도록 돼 있는 무력행위인데 이윤에 의해 움직이는 민간기업이 떠맡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으므로 군대와 PMC의 경계선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이호갑기자 gdt@donga.com

▼PMC 선두주자 KBR▼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 직원들(오른쪽 흰색 복장)이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식음료 조달, 막사 건설, 세탁 등 군대의 부수적인 업무를 KBR와 같은 각종 민간 기업들이 도맡아 처리하기 때문에 군인은 총을 들고 전투에만 주력하면 된다.-사진 출처 비즈니스위크

“미군이 가는 곳이면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도 간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피터 싱어 연구원은 지난해 9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KBR는 미군기지 건설에서부터 급식 세탁 수송 등을 담당하는 세계 최대 민간 군사기업(PMC). 2500여명의 직원이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등에 골고루 파견돼 미군을 지원한다.

▽초고속 성장=KBR는 설립 당시 건설회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사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63년 석유기업 핼리버튼에 인수된 후에는 에너지 관련 업무도 수주한다.

1990년대 말 KBR는 발칸반도 주둔 미군 2만여명에게 식량 식수 우편업무 중장비 등을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다. 군수 지원사업에 본격 뛰어든 것. 1999년 이 지역 미군을 대상으로 4200만 끼니의 식사 제공과 각종 세탁물을 처리하는 30억달러(약 3조4500억원) 사업권을 따내면서 세계적 PMC로 떠올랐다.

이라크전에서 KBR는 더욱 주가를 올렸다. 10만명이 넘는 미군의 식사를 공급하고 부대 막사 수리와 유전시설 보수도 맡았다. 사업규모가 발칸반도 때보다 10배 정도 커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KBR가 미 정부와 맺은 계약액은 42억달러(약 4조8300억원)에 이른다.

▽군과의 공생관계=군 업무를 도급받다 보니 PMC에는 국방부 관리나 미군 출신이 많다.

KBR의 모회사 핼리버튼은 1995∼2000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현 미국 부통령 딕 체니를 영입했다. 이 때문에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KBR가 7700만달러(약 880억원)의 이라크 유정 화재 진압 및 보수 사업권을 획득했을 때에도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미 국방부는 이런 의혹 때문에 지난달 핼리버튼과 맺은 130억달러(약 14조9000억원) 상당의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군수지원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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