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새판짜기’ 개혁론…‘빅5 안보리’ 60년만에 깨지나

  • 입력 2004년 7월 26일 19시 01분


냉전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빈곤, 환경, 마약, 에이즈, 난민, 아동, 지역분쟁 등 전 지구적 문제가 1990년대부터 급부상했다.

하지만 이에 대처할 유일한 국제기구인 유엔은 무력하기만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이 유엔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라크전쟁을 일으키면서 ‘유엔 무용론’까지 나왔다.

유엔이 지금처럼 무력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유엔 개혁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이 핵심=지난해 8월과 10월 이라크 바그다드 유엔사무소 폭탄테러 이후 ‘유엔은 미국의 앞잡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권위 있는 국제기구로서 유엔의 위상을 다시 찾자”는 요구가 유엔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유엔 개혁의 핵심은 안보리의 개혁. 냉전 이후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현 안보리 체제는 국제적 현실과 동떨어져 이제 현실적합성을 잃었다는 것.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급진적인 개혁만이 유엔의 살길”이라면서 “안보리 확대를 통한 권력 분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엔 회원국은 1945년 51개에서 2004년 현재 191개로 늘었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2차대전 승전국이 독점하고 있다. 나머지 186개국이 10개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놓고 다툰다.

하지만 △새 상임이사국은 어느 나라가 될지 △기존 상임이사국 지위는 어떻게 조정할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존속시킬지 등에 대해 회원국들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아직 걸림돌 많아=유엔 안보리가 결정한 내용은 회원국간에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권고 수준에 머무는 총회 의결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 게다가 상임이사국은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어 유엔 내 ‘핵심 자리’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본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회원국간 이해관계 대립으로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유엔에서 독일의 역할 증대를 지지하는 중국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참여에는 입장을 유보할 것이 확실하다. 또 미국은 이라크전에 반대한 독일의 상임이사국화에 대한 지지입장을 철회했다.

게다가 유엔 창설 당시 유엔헌장에 ‘상임이사국 5개국과 비상임이사국 10개국이 안보리를 구성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유엔헌장을 바꾸려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191개국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 때문에 유엔은 1993년 안보리 개편 실무그룹을 꾸려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는 주요국들의 노력도 계속 헛돌고 있는 상황.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유엔이 개혁의 실마리를 찾아 영향력을 회복할지 아니면 미국의 무시를 받다 무력화될지는 60주년을 맞는 내년에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상임국 진출’ 누가 뛰나▼

유엔 내에서도 ‘노른자위’로 꼽히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노리는 막후 외교전이 치열하다.

▽일본과 독일=두 나라는 국제사회에서의 기여도를 제대로 평가해 달라며 상임이사국 진출을 10여년 전부터 요구해 왔다. 하지만 양국 모두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

일본은 1992년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에 관한 특별조사회’를 만든 이래 유엔 창립 50주년인 1995년을 ‘상임이사국 진출의 해’로 정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2004년 기준 일본의 유엔 기부금은 2억8000만달러(약 3220억원)로 유엔 예산의 18%를 차지한다. 이는 미국(3억6300만달러) 다음이고 상임이사국인 영국(8800만달러), 프랑스(8700만달러)의 3배 수준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실추된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 회복이 국가적 목표다. 1991년 걸프전 때는 전비만 부담했지만 1995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 일원으로 보스니아에 전투 병력을 파견했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최근 열흘간 아시아권을 방문해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해 줄 것을 부탁했다. 21세기 위상에 걸맞은 독일 외교정책의 출발점을 상임이사국 진출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개발도상국도 뛴다=인도, 브라질,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 개발도상국들도 상임이사국을 노린다. 강대국 위주의 상임이사국이 각 지역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5개국 안보리 체제는 유엔 회원국이 51개국에 불과했던 1945년에 마련된 낡은 체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전통적으로 경쟁관계인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반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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