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살았다더니…” 유족들 절망의 몸부림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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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새벽에 전해진 청천벽력 같은 김선일씨(34) 피살 소식에 가족들은 하루 종일 오열했고 온 국민도 비통에 잠겼다.

분향소가 마련된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의료원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를 비롯해 선일씨를 본 적도 없는 일반 시민에서부터 학생에 이르기까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한 부산지역 기관장 17명은 이날 오후 시청 7층 회의실에서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갖고 선일씨 피살에 따른 지역 차원의 민심안정대책을 논의했다.

▽가족 반응=이날 오전 1시48분경 부산 동구 범일6동 선일씨 본가에서는 아버지 김종규씨(69)와 어머니 신영자씨(59), 동생 정숙씨(33) 등 가족들이 TV 자막을 통해 선일씨의 피살 소식을 접한 순간 “안돼”라는 비명을 질렀다.

김씨는 “어제까지만 해도 선일이가 살아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선일아, 선일아”를 외치며 쓰러졌다. 정숙씨는 “우리 오빠 살려내라”며 절규하다 곧 실신했다. 김씨 부부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를 지켜보던 이웃 주민들은 울분을 이기지 못해 선일씨의 집에 있던 이라크 국기 3개를 꺼내 집 밖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가족들의 감정은 이날 하루 크게 격앙됐다.

병원에서 깨어난 김씨는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정부가 파병 방침을 계속 공개적으로 밝혀야만 했었느냐”며 “정부의 서투른 대응이 선일이를 죽게 만들었다”고 원망했다.

오전 8시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제발 내 아들을 살려달라고 했는데…” “불쌍한 내 새끼. 나도 곧 따라갈 것이다”며 자포자기의 심정을 보였다.

▽분향소 표정=부산의료원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이날 하루 1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 선일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날 오전 2시반 본가에 임시 분향소를 차렸던 가족들이 주위의 권유로 오전 10시반 영정을 부산의료원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문상이 시작됐다.

가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분향소를 지켰으며, 어머니 신씨는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힘없이 흐느끼다 또다시 쓰러져 병실로 옮겨졌다.

오후가 되면서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 등 수십명의 정관계 인사들이 분향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과 김원기 국회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등은 조화를 보냈다.

그러나 유족들은 오후 6시경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찾아오자 “도대체 정부가 한 일이 뭐가 있느냐”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의 조문도 잇따랐다. 김병만씨(43·상업)는 “선일씨를 모르지만 TV만 보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워 조문을 하려고 찾았다”고 말했다.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비운의 청년 김선일씨▼

고(故) 김선일씨는 힘든 환경 속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가꾼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학비를 벌며 3개 대학에 신학대학원까지 다닐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착한 심성과 조용한 성격 때문에 어릴 때 교사들로부터 늘 칭찬을 받았고 항상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고교 졸업 후 성심외국어전문대(현 영산대) 영어과에 들어가 졸업한 뒤 다시 목사가 되겠다던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신학교(현 경성대 신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역 군복무를 마친 그는 전도와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1998년 한세대 신학대학원 선교학과에 들어갔지만 학비 때문에 중퇴했다.

그러나 향학열을 억누르지 못한 그는 2000년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용인캠퍼스)에 편입했다. 2003년 2월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그는 다시 석사학위를 따야겠다는 생각에 학비를 벌려고 같은 해 6월 이라크에서 군납을 하던 가나무역에 통역요원으로 채용돼 1년 계약으로 이라크로 떠났다.

그는 4월 말 아버지 김종규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라크에서 번 돈으로 칠순잔치를 열어 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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